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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er/Life Story

[고승희의 일상심리 Ep.3] 기억과 거짓말

SK(주) C&C 블로그 운영자 2017. 9. 20. 09:29

거제 대교를 건너자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분명 12년 전에 왔던 곳이다. 동행자는 그 때 사건들을 신나게 이야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랬어? 나는 기억이 하나도 없네뿐이었다. 2005년 거제도 여행, 돌이켜 보면 기억에 남은 것은 모두 사진 속의 장면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큰 충격에 휩싸인 나에게 동행자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사람은 아마 죽을 거야.”그래,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기억 못하는 것을 너는 기억하고 있잖아.” 기억이 없으니 어떤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고, 왠지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기억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기억은 기간에 따라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으로 구분된다. 감각기억은 수초까지만 기억을 유지하며, 단기기억은 수초에서 수분까지 기억이 가능하다. 뇌는 단기적으로 기억한 것 중 불필요한 것은 삭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뀔 때에는 뇌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 진다. 새로운 회로가 생기면 그 회로가 몇 시간에서 몇 주까지도 지속돼 기억이 장기간 저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뇌는 쓰지 않는 회로를 자꾸 없앤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 학습을 통해 이 회로를 더 강하고 두껍게 만들어야 하고, 기존의 기억과 연결고리가 있거나 감각과 감정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학창시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연상되는 단어나 연결고리들을 만들어서 반복적으로 암기하였다. 교과내용을 장기기억에 저장해서 시험 볼 때 꺼내고 싶었던 이유였다.

 

나의 기억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면? 나도 나를 믿을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1986 NASA(미국항공우주국)는 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를 지구 밖 궤도로 발사하였고, 1 1000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여성 민간인으로 최초 우주에 가게 된 크리스타 매콜리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전 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사건이 터진 다음날 코넬 대학교 울릭 나이서(Ulric Neisser) 교수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106명에게 설문지를 나누어 주고, 그 전날 누구와 어디에서 폭발 소식을 접했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그리고 나서 뭘 했는지 상세히 적게 하였다.

2년 반이 지난 후 다시 학생들을 불러서 똑 같은 질문을 하였고, 과거의 답변과 비교 해 보니 놀랍게도 25퍼센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응답자도 대부분 엉터리였고, 비슷하게 기억하는 사람 수는 10퍼센트를 채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과장된다. 당시 이러한 연구 결과가 나온 후 증언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 기억은 왜곡 되는가?

대학시절에 한 친구가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난히 신뢰를 받지 못하였다. 전후 사정을 들은 후에 그 아이가 왜 그 동안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됐다. 본인 또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안타깝기도 한 상황이었다. 얼마 후 그 친구를 지켜보던 나는 혼란에 빠졌다.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고, 똑 같은 잘못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 친구는 당시 고민을 이야기할 때는 진실돼 보였다. 그래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나에게 거짓말은 한 것인가? 아니면 당시에는 진심이었으나 마음이 바뀌었을까?

1891년 안톤 델브뤼크(Anton Delbrueck)에 의해 처음으로 설명된 공상 허언증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습관을 말한다.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탓에 거짓말 탐지기로도 잡히지 않는다. 이 증상의 환자는 없었던 일을 마치 사실처럼 확신을 가지고 만들어 말하거나 일어났던 일에 자신의 공상을 덧붙여 위장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스스로 믿어버리기에 죄책감도 없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쟁이와 병적 환자로 나누는 근거가 된다. 일본의 심리학 권위자 시부야 쇼조는 저서 <상대의 심리를 읽는 기술>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 현시욕이 강해 남들한테 주목 받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어 실제 이상으로 허세를 부린다고 말한다.

 

진실이 늘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병적인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여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만일 내가 고민 끝에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는 확신을 갖고 A라는 차를 구매했다고 하자. 그런데 A차가 가격이 과하게 책정되었다는 정보를 접한다면? 실망하는 것도 잠시, “A차가 가격이 높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이런 현상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론으로 설명한다.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말한다.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때 일반적으로 자기 합리화 증상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일상 생활에서도 처음에 목표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자기합리화(rationalization)’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불편한 진실 앞에 우리는 위안이 되는 거짓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잊혀짐의 미학그리고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 고된 인생에는 일종의 선물인 것이다.



[참고 서적 및 웹사이트]
정용, 정재승, 김대수 (2014),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사이언스북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