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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사용하는 ‘벙어리장갑’이란 표현에 청각·언어장애인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제 ‘벙어리장갑’이란 말 대신 ‘손모아장갑’을 쓰자는 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에 사회적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나섰습니다. 단어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나아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죠. 더불어 사는 행복을 전파하는 ‘엔젤스헤이븐’의 조준호 상임이사를 만나 행복이란 무엇인지 직접 들어봤습니다.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엔젤스헤이븐’ 사무실을 찾았다.

‘엔젤스헤이븐’은 1959년 설립돼 57년간 국내외 아동, 장애인을 위한 나눔 사업을 실천해온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이름이 복지 사업을 하는데 유리했을 것 같은데요. ‘엔젤스헤이븐’의 조준호 상임이사는 오히려 반대라고 말합니다.
 
“은평천사원은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에 이르러 고아들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천사원은 장애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장애인 돌봄 시설과 학교를 지었고, 이후 은평구 저소득 가정을 위한 사업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성장과 맞물려서 생기는 복지들을 하다 보니 영역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거예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의 양과 질, 모두 중요해요

 
‘은평천사원’이 ‘아동’에 국한된 복지만을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2012년, 명칭을 바꾸게 되는데요. 그래서 현재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엔젤스헤이븐’에는 서울재활병원과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은평기쁨의집 등 다양한 사회복지시설들이 마련돼 있습니다. 은평천사원 또한 여전히 아동양육시설로서 자리를 잡고 있음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조준호 상임이사는 ‘엔젤스헤이븐’의 규모보다는 서비스의 질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지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데요.
 


“예를 들어서 모르는 사람들 셋에게 집을 지어준다고 해보세요. 같이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자, 집 지어줬지? 이제 한 집에서 다 같이 살아’라고 하는 거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애인에게도 사생활이 필요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는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엔젤스헤이븐’은 ‘특별한집’이라고 하여 휠체어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유니버셜디자인을 적용한 것은 물론이고,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을 적절하게 구성한 대안적인 주거공간을 구축 중입니다. 이 밖에도 ‘비장애인처럼 장애인도 살고 싶은 데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의 ‘장애인 자립 서비스 지원 네트워크 만들기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고요. 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고민을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죠.


말 하나만 바꿔도 모두가 행복해져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말처럼 쉽지 않죠. 조준호 상임이사는 ‘말’ 하나만 바꿔도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벙어리장갑’ 대신 ‘손모아장갑’을 사용하자는 캠페인, ‘엔젤스헤이븐’은 2014년부터 적극 실시하고 있는데요. 무심코 사용했던 ‘벙어리장갑’이란 말에 상처받았던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인권개선의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라고 합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연말만 되면 슬프다는 거예요. ‘벙어리장갑’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벙어리장갑’을 보고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벙어리라는 놀림을 많이 받거든요. 그럼 ‘이름을 바꿔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단어 하나로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이잖아요.”


거리 캠페인을 통해 ‘손모아장갑’을 알렸던 엔젤스헤이븐



이를 위해 2014년에는 ‘벙어리장갑’에 새 이름을 찾아주자는 ‘Let’s Change’ 캠페인을 실시했습니다. 1,800여 명의 의견을 모았고, 통장갑, 엄지장갑, 모둠손장갑 등의 다양한 의견 중에서 3차의 투표를 거친 끝에 ‘손모아장갑’으로 이름이 정해졌고요. 이후에는 여러 기업과 은평구시설관리공단, 서울농아인협회 등 단체들의 동참을 통해 ‘손모아장갑’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답니다.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손모아장갑’을 등재시키는 거예요. ‘손모아장갑’을 쓰자는 청원 서명을 하고 있는데, 추후에 의견을 모아 국립국어원에 전달할 예정이에요. 또 올해는 ‘손모아장갑 실뜨기키트’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직접 뜬 장갑을 선물하면서 이런 취지의 운동도 있다는 걸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캠페인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이 무척 긍정적입니다. 조준호 상임이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손모아장갑’이라는 말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하며, 유통사를 비롯한 제작사,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살색’ 크레파스가 ‘살구색’ 크레파스로 바뀐 것처럼 ‘벙어리장갑’이 ‘손모아장갑’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인권감수성의 척도도 올라가겠죠?



모두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엔젤스헤이븐’의 가치입니다.” 
 
‘엔젤스헤이븐’의 비전과 꿈을 이야기할 때 조준호 상임이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들떠 보였습니다. 특히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적용하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최근 신경섬유종 때문에 얼굴이 무너진 채로 살았던 심현희 씨에게 모인 10억 원을 보고 조준호 상임이사는 크게 좌절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모인 돈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좌절감 때문입니다. ‘엔젤스헤이븐’은 시설이 좋으므로 모금액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동정’에 기초하지 않는 복지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시설이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교도소였다면, 앞으로는 개개인에 맞춤 서비스, 자율성을 보장하는 호텔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있든 없든, 장애가 있든 없든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엔젤스헤이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전문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준호 상임이사는 ‘행복한 사회는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사회’라고 말하며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화를 사회 구조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렇듯 누군가를 배려하면서 더불어 사는 기쁨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는 비결 아닐까요? 오늘부터 벙어리장갑대신 손모아장갑이라고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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