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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현은아 담당 | 'Me Talk Pretty One Day' &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SK(주) C&C 블로그 운영자 2016. 3. 10. 11:03회사 생활 지치거나 종종 웃음이 필요할 때면 찾는 책이 있습니다. 언제든 꺼내서 읽을 수 있는 크기의 수필인 David Sedaris의 “Me Talk Pretty One Day” 입니다. 이 책은 <뉴욕타임즈>에 20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300만부가 팔리기도 했던 인기 서적입니다.
이 책과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 11월 18일 아주 추었던 날로 기억합니다. 미국 미시건주에서의 오래된 이민생활을 접고 SK와 함께할 새로운 삶을 꿈꾸며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지금은 델타항공으로 합병 된) 노스웨스트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해에 신간으로 출간되어 공항 내 위치한 서점에 진열되어 있던 이 책은 친숙한(?) 브로큰 잉글리쉬로 된 제목이 재미있어 충동 구매를 했었죠. 이 책은 저를 비행기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소리 내어 웃게 만들었고, 주변 승객들이 저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 하기 딱 좋은 상황을 연출하게 해주었답니다.
영어로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책은 표지만 보고 평가해도 될 정도로 재미있고, 미국에서나 가능한 문화적 충격과, 작가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소소한 감동, 그리고 여러 면에서 외로운 소수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의 삶을 잠시나마 옅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 외에도 작가는 7권 에세이집의 저자 인데요, 약 2년에 한 권씩 선보이는 작가의 신규 서적을 기다리는 설레임은 제 삶의 큰 활력소 입니다.
책의 1부에서는 미국 Raleigh, North Carolina라는 곳에서 가족들과 지낸 평범한(?) 생활상과 New York 이라는 불친절하고 고집불통인 이웃으로 가득 찬 도시를 묘사하며, 2부에서는 미국에서 자란 작가가 프랑스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겪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겪을 법한 시시콜콜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과 그의 눈에 포착된 일상의 난관을 작가 고유의 해학적이거나 풍자적인 말투로 꼬집는 기술이 탁월해서 읽는 내내 크게 웃게 됩니다.
‘S’발음을 “th”로 발음해서 언어치료 관리대상이 되자 모든 대화에서 “s”가 포함된 단어의사용을 중단하기 시작한 작가는 해산물을 “seafood”가 아닌 “marine life”라고 부른다거나, “two rivers”는 “a river or two”라고 하고, “yes”라고 대답하는 대신 군대에서 나올법한 “affirmative”라고 대답을 한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작가의 가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그리스계 아버지인데요, 마트에서는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싼 음식만 사 오시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일단 이빨로 씹어보아야 하시고, 초등학교 아들의 학교 공연에 갑자기 끼어들어 예술활동을 방해하시는 등 요즘 말로 “완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책의 1부는 지독히도 “미국스러운”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작가와는 달리 입이 험하고 뼛속까지 ‘수컷’인 동생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룬 에세이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부모님과 멀리 떨어진 New York에서 바쁜 생활을 하며 명절때만 부모님을 뵈러 오는 작가와 여동생 보다는 허리케인에 망가진 옆 동네 부모님의 집을 고쳐드리러 한달음에 달려간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한 “white trash”인 남동생이 아버지에게는 더 절실한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깊고 씁쓸한 메시지도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 갑니다.
2부에서는 그리스계 미국인인 작가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어학원에 등록하여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져 있는데, 외국어에 도전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으로 가득 합니다.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게에서 물건도 못 사고, 전화도 받지 않고, 청각장애인인 척 연기까지 해야 했던 작가의 유쾌한 경험담은 13살 때 미국으로 이민가서 영어를 배워야 했던 저의 모습에 투영되어 공감 되었습니다. 다만, 누구나 겪어보는 그 경험을 엄청난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작가와 같이 그 어처구니 없음을 해학적으로 소화하고 나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질투심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저희 옆 팀의 팀원이 25층 u-Tower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봤는데요, 제가 매일 바라보는 동일한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사진 속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같은 풍경인데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책의 작가 역시 외국어라는 힘든 난관을 저렇게 유머러스하게 볼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Perspective를 주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강의실 벽 너머로 슬슬 빠져나가서 넓은 대로까지 나를 쫓아왔다. 잠깐 커피를 마실 수도 길을 물을 수도 없었다. 왜? 말을 해야 하니까. 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았다. 질문을 받으면 귀먹은 척 했다. 왜 “고기 자동판매기”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프랑스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한 것을 깨달았다.
이쯤 되면 책의 제목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프랑스에서 작가가 다닌 어학원의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늘지 않는 언어실력과 학생들의 작은 실수도 대놓고 업신 여기며 “너를 보는 날마다 난 제왕절개 수술을 받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는 까칠한 선생님을 비관하며 나눈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 입니다.
나와 동료 학생들은 복도를 바삐 오가면서 얼마 안 되는 프랑스어 어휘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난민 수용소에서 오갈 법한 대화를 나누었다.
“Sometimes me cry alone at night.” (가끔 나를 혼자 밤에 웁니다)
“That be common for I, also, but be more strong, you. Much work and someday you talk pretty. People start love you soon. Maybe tomorrow, okay.” (그거 공통이다 나도, 역시, 그러나 더 힘내요. 공부 많이, 그러면 언젠가 말 예쁘게 한다. 사람들이 곧 너 사랑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일, 괜찮아.)
학기가 끝날 때쯤 까칠한 어학원 선생님이 작가를 따로 불러서 온갖 모욕적인 말을 하는데, 그 즈음 프랑스어에 귀가 뚫리기 시작한 작가는 하필 이때에 선생님의 말을 모두 알아 들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엄청난 카타르시스에 흥분합니다.
The world opened up, and it was with great joy that I responded, “I know the thing that you speak exact now. Talk me more, you, plus, please, plus!”
외국어를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작가의 깨알 같은 지적은 몇번을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공감됩니다. 회사생활에 지칠 때나 소소한 웃음이 필요할 때 David Sedaris작가의 수필이 가벼운 활력소가 될 것 같아 추천 드립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2015년 국문으로 번역 따끈따끈한 소설인데요, 서양문화를 배우기 위하여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철없고 무책임한” 모던 지식인으로 유복하게 자란 주인공 루옌스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이 찍혀 집 앞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막내딸 앞에서 막무가내로 잡혀가 오랜시절 동안 수감생활을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소설 입니다. 중문학의 단골소재인 드라마틱한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꺼운 책에 빼곡히 적혀있는 섬세하고 군더더기 없는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면 읽어나가게 합니다.
활자를 머릿속에 사진같이 저장할 수 있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루옌스가 수년 동안 그의 기억에 담아둔 수용소에서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이를 훗날 손녀 딸이 독자가 되어 읽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 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저의 머리 속에는 대초원에 유배된 지식인 루옌스의 얼굴과 그의 표정, 아내 펑위안이 고모가 선물로 준 보석을 팔아 선물해준 골드 오메가시계가 채워진 주인공의 손목이 비쥬얼로 생생하게 떠오르게 되고, 마치 저 자신이 수용소에 함께 수감된 동료인 듯 꼽사리(주인공의 별명)의 배고픔과 추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위 “잘 나가던” 루옌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하여 새어머니가 반강제로 결혼 시킨 아내 펑위안을 주인공은 냉담하게 대해왔으나, 모든 자유를 빼앗긴 수용소에서야 뒤즞게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고 탈옥을 결심한 주인공을 열렬히 응원했으나, 이 책에 그려진 가족상봉의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고 독자를 혼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습니다. 시간이 되실 때에 꼭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옌거링 작가의 베스트셀러인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마음속의 긴 여운을 느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이 책을 중국 장이머우 감독이 진도명(루옌스)과 공리(펑완위)를 주연으로 <5일의 마중>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혹시나 이 책의 긴 여운이 사라질 까봐 유뷰트에 올려진 트레일러조차도 아직 용기를 내어 클릭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두려움 없이 영화를 보리라 마음속 다짐을 해봅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회오리속에 갑자기 송두리째 변해버린 개인과 가족의 비극, 그리고 인간은 가족에 대한 사랑만으로도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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