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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Sight] KBS <역사저널 그날> 고정훈PD,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읽다
SK(주) C&C 블로그 운영자 2016. 1. 7. 17:05역사를 다루는 다큐 PD의 눈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유연한 통찰력을 빌려 지난해와 새해의 경계에 서 있는 12월의 균형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
KBS <역사저널 그날>의 고정훈 PD를 만났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정의했다. 그래서 작정하고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일까. 토크쇼 형식을 빌려 역사에 대한 유쾌한 수다를 풀어놓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전무후무한 역사 교양 프로그램이다. 너도나도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준비하는 12월, 발랄하면서도 의미 있게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일러줄 조언자로 <역사저널 그날>팀에 손을 내민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를 움직인 터닝포인트가 된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뒤 이를 각기 다른 시선을 지닌 패널 간의 수다로 풀어낸다. 눈높이를 균형 있게 맞춰가는 최원정 아나운서가 중심을 잡고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최태성 선생, 여기에 류근 시인과 영화감독 이해영, 개그맨 이윤석까지 합세해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매력은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흐름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다섯 명의 PD가 5주에 한 편씩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12월의 둘째 주, ‘장보고’ 편의 막바지 편집에 한창인 고정훈 PD를 편집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역사스페셜>, <한국사 전傳>, <역사추적>과 같은 묵직한 정통 다큐부터 토크와 재미를 접목한 <역사저널 그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역사 다큐를 만들어온 고정훈 PD.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역사를 어떻게 마주하고 해석해야 할까?’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물음을 품고 나선 홍소라 사내기자와의 만남에 고정훈 PD는 ‘편하고 즐겁게’ 이야기하기를 강조한다.
잠든 역사를 깨우다
1996년 입사해 어쩌다 보니 역사 전문 PD로 굳어져버렸다며 웃는 고정훈 PD. 그는 역사 다큐를 만드는 일을 ‘죽어 있는 역사를 깨워 현재로 불러내는 의식’이라 말한다. 깊은 곳에서 숨죽여 있던 역사,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미미한 역사, 혹은 사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해받던 역사를 찾아내 다시금 숨을 불어넣는 것은 역사 다큐 PD의 사명이자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단편적으로 접하게 되는 한두 줄의 역사는 죽어 있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료를 공부하며 깊이 파고들다 보면 당시의 사건이나 인물의 맥락에 점점 생기가 돕니다. 그걸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PD의 역할인데요. 이 과정에서 남아 있는 유적을 찾거나 당시의 현장을 가게 되면 그곳이 현재는 허허벌판일지라도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죽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오는 거죠.”
과거를 살리는 일은 현재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조심해야 할 사항은 누가 어떤 시각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살아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의 시선으로 사건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이미 개인적인 해석이 덧대어진 역사서가 아니라 원본 그대로의 사료를 면 대 면으로 만났을 때 더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단순히 과거를 들추기만 하고 끝낸다면 역사를 이야기하는 의미가 없다. 역사의 진짜 힘은 현재에 발휘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참 빠르게 성장해왔습니다. 순간순간 바삐 움직이며 살다 보니 긴 맥락에서 삶을 반추하거나 과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 쉽지 않았죠. 역사의 장점은 과거 이야기를 빌려 현재의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너무 급하게 달려온 우리에게 과거를 되짚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반추도 하고, 반성도 하고 어쩌면 현재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바쁠수록 뒤돌아봐야 한다. 때론 괴롭고 힘든 과거와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숱한 궤적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수시로 돌아볼 줄 아는 이만이 앞으로 나아갈 길도 현명하게 찾을 수 있다.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단순히 잊히는 게 아니라 왜곡을 낳는다. 잘못 박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정훈 PD는 1950~60년대 재일교포 북송을 다룬 다큐를 만들며 몇 번이나 놀랐다. 자신이 막연히 알고 짐작하던 사정과 현실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1959~60년, 만경봉호를 타고 재일동포가 대거 북한으로 이주합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북한이 고향인 분들이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출신이었죠. 당시 상황을 보니 일본은 자국에 있는 한국인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압박을 주고 있었고, 이승만 정권은 일본이 배상금을 주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립했습니다. 이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후 노동 인력이 부족했던 북한이 받아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남한보다 나았고 결정적으로 4.19혁명이 터져 곧 통일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까지 생겼으니 남한에 고향을 둔 상당수가 ‘북한도 우리 땅’이라는 생각으로 만경봉호에 오른 것이죠. 그렇게 총 10만 명이 북으로 갔어요.”
관심에서 멀어진 왜곡의 역사를 다시 꺼내 살려내는 순간 그것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 어쩌면 내가 겪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된다. 고정훈 PD는 ‘내가 만약 당시의 재일교포였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역사에 ‘만약’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이를 재조명하는 과정에서는 늘 다양한 선택지까지 고려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역사 다큐를 제작하다 보면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오는지, 그렇기에 얼마나 깊이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더불어 배운다. 고정훈 PD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작은 ‘선택’ 하나도 진중히 대할 줄 아는 태도를 익혔다.
역사, 유쾌하게 이야기하자
역사를 다룰 때 가장 어려운 숙제는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각기 다른 시각을 지난 출연자가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서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간의 역사 다큐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기존의 역사 다큐멘터리는 무게를 잡고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종일관 진지하죠. <역사저널 그날>은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즐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스페셜> <역사추적>과 같은 작품이 역사의 대중화에 성공했다면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의 예능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데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재미와 의미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숙제이긴 하지만요.”
이야기로 역사를 풀어가다 보니 다큐로 제작하기 힘든 소재가 흥미진진하게 다뤄질 수도 있다. ‘대동법과 김육’ 편의 경우 현대인의 시각에서 세금 문제에 공감하기도 하면서 더욱 생생하게 대동법의 의미와 영향력을 되새길 수 있었다. 해석이 다양하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할수록 역사도 재미있어진다.
“메시지를 얻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보다가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과 비교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하고,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스스로를 반추해보기도 하면서요.”
고정훈 PD는 역사에 있어서도 이야기를 중요시한다. 이야기는 다시 말해 대화와 소통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없으면 불편하고 오해를 사게 된다. 관계의 진전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하나의 거대한 물결로 이어지는 역사는 어떻겠는가. 끊임없이 대화하지 않으면 흐름이 막혀버릴 수도 있다. 12월, 2015년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열심히 달려온 한 해에 대해 각기 다른 시각, 각기 다른 이야기를 즐겁고 풍성하게 나누며 소통할 때 2016년으로 향하는 길이 좀 더 밝게 보일 것이다.
♣ 출처 : SK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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