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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등산과 SK
2010년 4월 1일, 고(姑) 최종현 회장이 산림 녹화에 기여한 공로로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숲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숲의 명예의 전당”은 1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가꾸거나, 임업기술 연구개발 등에 공헌한 사람을 선정하여 헌정하는데, 그는 생전에 4100ha(약 1,200만평)에 이르는 산림에 300만 그루 이상의 그루를 심는 등 국토의 녹화에 공헌한 점이 인정되어 헌액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많은 산중에서 인등산(人登山)에 조림(造林)을 하였을까? 정감록에 따르면 충주 분지를 따라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맥을 이루어 태극무늬와도 같은데, 천지인(天地人) 사상에 입각해 작명된 산이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이라고 한다. 또한 “천, 지, 인” 3개의 산을 합쳐 삼등산이라고 부른다. 3개 산 모두 공통적으로 쓰는 “등(登)”에 대한 한자를 추적하면, “익다”, 또는 “도약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즉, 인등산(人登山)은 사람이 성숙하고, 사람이 도약하는 산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당시 최종현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들어 국가에서 장학금 제도를 시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장학금 제도를 운영해왔다. 유학비용 학자금 전부와, 생활비까지 무상으로 사비를 털어 재단을 세우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재원(財源) 중 사람이 근본이란 철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SK의 전신인 “선경”이 그리 큰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재양성”에 대한 철학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는데 그의 실천의 기준은 경영철학에 기초된 것으로, “기업경영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이다. 그러므로 기업경영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인간 위주의 경영이며, 이를 위해 사람을 사람답게 다룬다는 기본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라고 누누이 강조하곤 하였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산중에서 인등산(人登山)에 조림을 한 이유는 자명한 답이 된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의 중심이 되는 인등산(人登山), 즉 “사람이 성숙하는 산”에 조림을 함으로써,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장기적인 안목과 신조가 있어, 인재의 성장의 뜻을 가진 인등산(人登山)에 조림을 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삼등산 종주
천등지맥의 주를 이루는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은 지맥의 길이 거의 없고, 당일 산행 치곤 난이도가 높아 산오름 회원들과 가는 것은 무리라 생각되어, 지맥팀 형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내가 가고 싶다고 하면 지맥팀 선배들은 언제나 “Call”해주신다. 대신, 삼은 형은 다릿재에서 천등산 가는 길은 몇 번이나 가봐서, 윗동광마을을 들머리로 하자고 했다.
11월 22일 10시 28분, 윗동광마을에 도착, 사그막이(사그맥이라고도 함) 길로 올라간다. 지도상에서는 등산로가 있었으나, 사람이 다니지 않아 축축한 낙엽더미를 더듬으며 길을 만들어 올라간다. 1/3 정도 올라가니 인등산처럼 천등산도 임도가 생겼다. 임도 우측길을 따라 50미터 정도 걸어가다 다시 지능선을 따라 오른다. 지능선 길은 축축히 젖어 이끼군락을 이룬다. 우리는 이끼가 만발한 미끄러운 바윗길을 따라 이동한다. 10분쯤 지나자 드디어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천등산 정상에 다다르기 전, 백운산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천등지맥은 유난히 무덤과 돌무더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기(氣)가 세고 영험(靈驗)한 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등산 종주 지도(상단부터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윗동광마을에서 임도가는 길(길이 험한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자 포장되지 않은 임도가 나타나고, 우린 우측길을 따라 이동
다시 천등산 정상을 향해 이동
천등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잡은 돌무더기(돌탑)
천등산 정상, 느릅재까지는 3.2km
천등산 정상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다시 느릅재를 향하여 길을 나선다. 천등지맥길은 천등산 남쪽 방향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무난한 능선길을 이룬다. 오르막을 칠 땐 힘에 겨워 잘 보지 못했으나, 수북한 낙엽과 앙상한 가지들 속에서 어느덧 늦가을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루금 위로 바람이 불면 높고 낮은 봉우리가 춤추는 파도가 된다. 바닥에 곤히 자던 잔잔한 낙엽들도 봉우리와 함께 일렁인다. 빨강과 노랑이 수를 놓은 단풍진 산도 아름답지만, 헐벗은 만추의 산도 아름답다. 단풍이 진 숲을 걷는 것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낙엽이 쌓인 길을 걸을 땐 사색의 즐거움을 준다.
사람은 움켜쥔 손을 펴기에 주저하나, 나무는 주저 없이 잎새를 떨군다. 때문에 상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정신이 성숙해지는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뜨거운 실존” 이다.
나목
최승범
모두들 떠났대도
난 실존하고 있다
가멸참이야
또 찬란함이야
스산한
비바람 따라
구름처럼 오가는 것
때론 매운바람이
날 채찍질해도
하얀 눈 아침이면
카랑한 물맛이다
뿌리야
뜨거운 실존
항시 꿈에
탄다
최승범 시인의 글처럼, 가멸차고 찬란한 길을 걷는다. 천등산(天登山)의 마루금 길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생각으로 길을 걷다 보니, 천등산 임도길로 접어든다. 하산 임도길은 2003년도에 만들어진 길임을 표지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임도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걷다가 다시 마루금이 연결되어 마루금을 따라 하산하면 느릅재에 당도한다.
천등산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타게 되면 정자가 나타나고
바로 이어서 헬기장이 나타남
늦가을 나무들의 정취
아직 느릅재까지 1.9km
다시 나타난 임도길
오르막길에 만났던 임도는 2015년, 내리막길에 만난 임도는 2003년도에 만들어짐
임도길 따라서 하산
소나무가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위태로운 비탈. 그래서 더 찬란한 경관
느릅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중원 골프클럽 표지석
SK 아카데미 SIGN도 보이고
잘 보이지 않던 느릅재 표지석도 발견
느릅재에서는 인등산 정상으로 가는 마루금 등산로를 찾을 수 없다. 인등산은 SK에서 대대적으로 산길을 정비했기 때문에 지맥꾼들이 마루금을 따라 걷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래도 인등산의 마루금에 비슷하게 걷기 위해 SK아카데미로 가지 않고, 중원 골프장 길을 따라 걸었다. 중원골프장 안쪽으로 깊게 들어오면 작은 주유시설이 있는데 주유시설 뒤를 돌아 모래더미 위로 올라가면 담을 넘을 수 있다.
담을 넘자마자 인등산을 오르는 임도가 이어지는데, 임도에서 30명 정도 되는 등산객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인원 중 몇은 등산장비를 착용하고 있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걸로 봐서 SK임직원 연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대체로 앳띤 얼굴을 하고 있어서 “신입사원”이냐고 물으니, SK 인포섹 신입사원들이라 했다.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길을 재촉했다.
지등산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속보로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뒤돌아보니, 산오름 회원인 인포섹으로 이동을 하신 이동만 본부장님이 뒤에서 부르고 계셨다. 우연히 만난 터라 너무 반가웠지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선다.
인등산 임도를 따라 가다 우연히 만난 SK인포섹 신입사원 연수 그룹
임도를 따라 약 300미터를 걷다가 자작나무 군락 길을 따라 길을 뚫고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마루금은 길이 아예 없고 인등산까지 오르려면 우회길을 택해서 가야 하나, 우리는 우직하게 마루금을 걷기로 했다. 자작나무 비탈에 길을 만들어 능선길을 500미터 정도 오르니 비로소 등산로에 접어들 수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어 왼쪽 능선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걸으니, 드디어 인등산 도착한다. 그 어느 산의 정상석도 기업에서 가다듬어 만든 정상석이 없다. 오직 SK만이 인등산에 SK 회사명을 달고 정상표시를 하고 있다. 물론 충주시의 인등산 정상석이 있으나, SK 마크를 달고 있는 인등산 마크가 훨씬 화려하고 아름답다. 우린 간단히 인등산 정삭표시에 인증샷을 찍고 바로 장선고개로 향한다. 장선고개로 가는 길은 수많은 묘지들이 즐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등산에서 자작나무 군락을 따라 마루금 길을 만들어 이동
인등산 정상. 오직 SK만이 CI를 달고 산 정상을 표기했다
장선고개로 가는 길에 수많은 묘지들
사진 가운데 보이는 것은 너구리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모습. 너구리가 깰까봐 가까이 가서 찍지는 못했다
드디어 장선고개 도착
장선고개에서 지등산으로 가는 마루금에도 길은 없다. 수많은 지맥꾼들이 어떻게 천등지맥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여태 걸었던 지맥 길 중에서 가장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은 길인 듯싶었다. 장선고개에서 공사중인 절개지 따라 걷다가 마루금길 따라 길을 만들어 올라선다. 가시나무를 대충 손으로 정리하며 길을 만들어 간다.
11월이라 다행이지 7~8월이면 못 갈 듯 싶었다. 비가 온 뒤의 육산 비탈길은 미끄러워 오르기에 여간 어렵지 않다. 바지는 이미 진흙으로 심히 더러워진 상태가 되었고, 엉덩이도 두세번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남쪽 마루금 길을 따라 1km 정도 오르니, 드디어 관모봉과 지등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미 해가 많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해가 지기 전에 지등산에 도착하기 위해 좀 더 힘을 내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였다.
밤나무 숲을 따라 능선길을 걸으면 어렵지 않게 지등산에 도착한다. 선배들이 앞서서 먼저 갔는데 지등산 정상에 도착하니 흔적이 없어 먼저 하산했나 싶었다. 어디에 있냐고 전화를 했더니, 관모봉을 들렀다가 지등산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여서 지등산 정상에서 삼등산 등반 기념 사진을 찍고, 충주호와 충주댐을 구경했다. 일몰과 함께 충주호를 감상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해는 저물고 말았다. 우린 아쉽지만 밤나무 과수원길을 따라 하산하여 오늘의 산행을 뿌듯하게 마무리한다.
솔잎은 마루금 길에 떨어져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고
관모봉과 지등산 분기점
어둑해진 지등산 등산로
바로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지등산
드디어 지등산 정상 도착
하산로 건지마을까지는 1.5km
지등산 정상 인증샷
삼등산을 종주해서 손가락으로 “3”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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