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과의 첫 만남

2004 8 22, 오늘과 같이 설악산 공룡능선에 갔다.  안개 틈 사이로 멋진 능선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광경을 보면서, 그 신성함과 웅장함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거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를 때마다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의 광경은 힘든 일 후에 더욱 성취감을 갖는 것과도 흡사했다.  설악산은 첫눈에도 반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1년에 적어도 서너번은 설악산에 가고, 그 중 적어도 한번은 반드시 공룡능선에 오른다.  운명처럼 첫눈에 반한 공룡능선은 언제나 날 부르는 듯 하다.  공룡능선의 중간지점인 1275봉 정상에 올라 용아릉과 달마봉, 그리고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옥황상제가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느낌과 흡사하다. 그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귀의(歸依)를 통해 비로소 정념(情念)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런 느낌을 산오름 회원들과 함께 하고 싶어, 설악산을 함께 걷기로 했다.


   15시간의 대장정의 시작

운전을 해서 설악산에 가려면 회귀산행을 하거나, 산행 날머리에서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사람들 산악회에 미리 예약을 하고 1인당 값싼 2 2천원을 지불했다.  다만, 산악회 버스는 13시간 안에 주파를 해야 하는데, 설악산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을 데리고 13시간 안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주파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그 멋진 공룡능선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것도 공룡능선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하산하여 설악산 매표소에서 속초로 돌아가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2015 8 30일 새벽 3 35, 오색약수터 매표소에 도착,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대청봉을 오른다.  6명의 회원들이 헤드랜턴을 켜고 나란히 오르막을 내닫는다.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을 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가장 빨리 정상에 닿을 수 있다.  한계령에서 오르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적당한 쉼터에서 쉬면서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오른다.  정상을 1km 남기고 동이 트고, 우리는 더욱 열심히 오르막길을 걸어 드디어 대청봉에 도착하였다.  북동쪽으로는 화채봉이 우뚝서 보이고, 북쪽으로는 달마봉과 울산바위가 늘씬한 능선을 자랑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공룡능선과 황철봉이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서북능선을 지나 귀때기청봉과 안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점봉산과 오대산 군의 마루금이 보인다.  우리는 대청봉 정상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중청산장으로 향했다.  오른쪽 출입금지구역 길로 내려가면 멋진 화채능선길로 이어진다.  설악의 화채능선, 용아능선은 불륜과도 같아서, 한번 빠지면 하염없는 나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다.  또한 실수라도 하는 날엔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

중청산장에 자리를 잡고, 코펠 두 개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우렁이와 조갯살, 어묵 그리고 표고버섯과 섞어 끓인 해물라면, 스팸과 함께 끓인 스팸라면을 김밥과 함께 먹었다.  초등학교 학생들 소풍이라도 온 듯, 우린 해맑은 미소와 함께 아침을 옹기종기 모여 먹고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중청 대피소엔 제법 시원스레 바람이 불었다.   올해 여름 산행 중에서 이렇게 시원한 날은 없었지 않나 싶었다.

이른 아침 대청봉에 올라. 이행현 과장 ⓒSK주식회사 C&C

같은 자리에서 필자(筆者) ⓒSK주식회사 C&C

대청봉에서 중청 대피소로 가는 길에 김태용 과장. 우측 뾰족한 산군은 공룡능선 ⓒSK주식회사 C&C

같은 위치에서 범진씨 ⓒSK주식회사 C&C

드디어 중청대피소 도착 ⓒSK주식회사 C&C


   아쉬운 이별, 탈출구는 없다!

다시 길을 떠난다.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제법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중청에서 소청 갈람길까지 가는 길은 시야가 장쾌하여 남설악을 제외한 설악의 거의 모든 산군을 볼 수 있다.  중청 대피소부터 마등령까지는 백두대간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 중 하나이다.  김태용 과장이 데리고 온 일행이 몸이 좋지 않아, 삼거리에서 헤어진다.  그들은 기나긴 수렴동계곡을 따라 백담사로 하산할 예정이다.  희운각에서 천불동까지는 태풍 나비로 인한 산사태로 인해서 통제된 상태라 남은 4명은 희운각을 지나 무조건 공룡능선을 지나가야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40분쯤 내려가니 드디어 희운각 대피소. 우린 간단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이동한다.

소청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너구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SK주식회사 C&C

희운각 대피소로 가는 계단길 암릉에서 이판기 부장님 ⓒSK주식회사 C&C

다시 또 암릉, 암릉, 암릉 ⓒSK주식회사 C&C

필자도 한 컷 ⓒSK주식회사 C&C


   드디어 공룡능선, 그러나 암릉길은 안개 속으로 가리워지고

신선대로 오르는 공룡능선의 첫 번째 오르막길은 두 다리에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를 꽤 올려줘야 한다.  폐 깊숙히 심호흡을 하면서 빨리 오르막길을 치는 재미는 산꾼만이 알 수 있다.  심장박동이 꽤 올라갈 때 즈음, 우리는 신선대에서 공룡능선군을 바라보게 된다.  범봉, 1275, 나한봉, 마등령, 그리고 황철봉까지 우리는 운명의 산 설악산을 바라본다.  멀리 우측 절벽 위로 노적봉이 보이고 보이지 않은 그 뒷편 절벽길은 시가 절로 나온다 하여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 불린다.

1275봉 다음으로 전망이 좋은 신선대에서 공룡능선군을 배경으로 이행현 과장 ⓒSK주식회사 C&C

오늘 후미를 책임진 좋은 사람들 산악회 죠은생각 대장 ⓒSK주식회사 C&C

이런 포즈는 절로 나온다. ⓒSK주식회사 C&C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암릉을 지나면 1275봉 안부를 오르는 가파르고 무시무시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1275봉을 오르기 전에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한참을 쉬다 오르는 코스이다.  우리 일행은 다행히도 체력이 남아서 가뿐하게 1275봉 안부까지 올랐다.  제법 안개가 많이 끼긴 했으나, 우린 1275봉 정상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일반적인 등산로는 아니나, 1275봉 정상에 올라가야 공룡능선을 갔다고 할 수 있다고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기 때문이었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타고 올라 1275봉에 도착하였으나, 안개 때문에 경치를 통 볼 수 없었다.  용아능선 방향만 안개사이로 살짝 볼 수 있고, 시야는 온통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게다가 기분나쁜 날파리가 너무 많아서 우린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1275봉 안부로 하산하였다.  아마도 1275봉 정상에서 비박(Bivouac)을 한 사람이 음식물 찌꺼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날파리가 들끓었을 듯싶었다.  우리는 아쉽게도 1275봉 안부에서 내려와 나한봉으로 향한다.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런 경치는 볼 수 없다. ⓒSK주식회사 C&C

암릉과 나무, 구름의 환상적인 자태 ⓒSK주식회사 C&C

점점 안개가 껴가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변모하는 공룡능선 ⓒSK주식회사 C&C

1275봉 안부로 오르는 너무도 힘든 꼴까닥 고개 ⓒSK주식회사 C&C

힘들게 1275봉 정상에 올랐으나, 안개로 인해서 용아릉 일부만 보이고 ⓒSK주식회사 C&C

오른 노력이 아까워 안개가 거치기를 바라는 이판기 부장님. 그러나, 발길을 돌리고… ⓒSK주식회사 C&C

아쉽게도 1275봉 안부로 내려가려 발길을 돌린다. ⓒSK주식회사 C&C


   역경 속에서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

나한봉으로 가는 길은 1275봉에 비하면 한결 수월하다.  나무로 덧대놓은 길은 길 보강공사로 더욱 쉽게 변모되었다.  예전 같으면 4시간만에 공룡능선을 지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길이 좋아져 지금은 잘 간다는 산꾼들은 4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다.  짧은 오르막 내리막을 거쳐 마침내 나한봉으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고 우리는 범진씨가 가져온 얼린 망고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직까지 냉장 보관되어 이가 시릴 정도로 차다.  잠시 걷힌 안개 사이로 공룡능선 아래 수많은 암릉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많은 암봉들 바닥에서 하늘을 치닫고 꽃처럼 피었다.  점심 때가 이미 지났지만, 맑은 공기로 배를 채워 우리는 배고픈 사람 하나 없이 마등령에 다다른다.  마등령의 명당자리를 이미 점해버린 비박꾼 무리들이 황철봉에서 채취한 노루궁뎅이 버섯을 소주에 담궈두었다가 한잔씩 나누워 준다.  역시 풍류를 즐기는 산꾼들은 인심도 좋다.  노루궁뎅이 냄새가 소주를 덮어 향이 진해 아찔하다.  간단히 술을 한잔씩 얻어 마시고 점심 식사를 풀었다.  간단한 빵과 떡 그리고 과일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돌길이라 악명이 높다.  어떤 산꾼들은 비선대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무릎이 망가진다고 시간이 훨씬 들더라도 백담사로 간다.  나는 혹시나 시간이 되어 속초 동명항에서 회 한사발을 먹을 수 있을까 해서 무조건 비선대로 향한다. (백담사로 가면 버스를 타로 인제로 가야 하기 때문에 회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드디어 이판기 부장님이 진저리를 친다.  무릎 뒤쪽이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가방에서 무릎 보호대를 꺼내 이판기 부장님 무릎에 덧대어 드렸다.  다행히도 아픈 무릎을 이끌고 무사히 비선대로 하산하여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1275봉 안부에서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을 향해 ⓒSK주식회사 C&C

안개가 갑자기 걷히니, 수석전시장이 나타나고 ⓒSK주식회사 C&C

안개가 조금 더 걷히길 바래보지만, 아쉽게도 다시 안개는 걷히질 않고 ⓒSK주식회사 C&C

나한봉으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 ⓒSK주식회사 C&C

안개는 더욱 깊어지고, 공룡능선을 향한 내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SK주식회사 C&C

마등령은 이제 지척으로 가깝고, 우린 비로소 안도감이 들지만 ⓒSK주식회사 C&C

세존봉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가는 내리막길은 징글징글 험했지만 ⓒSK주식회사 C&C

드디어 비선대 도착. 3명의 전사들은 설악산 공룡능선에 첫 도전하여 성공 ⓒSK주식회사 C&C


   P.S.

한잔의 술을 함께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힘든 산행을 함께 하게 되면 한잔의 술, 그 이상을 알게 된다.  힘든 암릉길에서 서로 손을 잡아가며 엉덩이를 밀어주며 서로를 정독(精讀)할 수 있다.  우린 알고 보면 공룡능선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다. SK주식회사 C&C 산악동호회 산오름과의 Karma에 대해 신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오늘의 공룡능선 산행기를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