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는 생선 맛으로 즐기는 음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허술한 미각으로는 갖은 양념에 섞인 생선회 맛을 찾기 힘들죠. 그러니 물회에서 생선회의 종류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아니 생선회가 빠져도 그 자체로 먹을 만한 음식인 거죠. 이름에 ‘회’가 붙었을 뿐 물회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회가 아닙니다. 

어부들의 한 끼 식사, 물회

원래 물회는 끼니였습니다. 어촌 사람들이 간단히 한 끼 때우기 위해 조리해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먹기 부담스럽지 않고 훌훌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조리법과 맛이면 충분했던 것이죠. 어느 민족의 음식이든 일상에서 먹는 끼니란 대체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삼시세끼 먹는 끼니에서 황홀할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러니 물회도 그런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옛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생선회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형편상 지금처럼 생선의 살을 곱게 발라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국민 대부분이 밥을 굶지 않게 된 것이 기껏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보세요. 

여기에 어촌은 논밭이 없어 농촌보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는 옛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보태 생각하면, 바닷가 사람들은 끼니를 때우는 일도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생선회는 우리가 지금 외식으로 즐기는 별미가 아니라 어촌의 끼니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자, 그럼 이제 상상력을 동원해 물회의 탄생 스토리를 그려봅시다. 조선 시대만 해도 항구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큰 배로 먼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죠. 그 시

대 어촌 사람들은 죽방과 독살 등 고정 포획망에 들어오는 생선만을 잡았으니 당연히 생선 크기도 들쭉날쭉했습니다. 어부들은 크기가 큰 생선은 팔고 자잘한 생선은 먹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어부의 부엌에는 날이 선 사시미칼이 없었기에 뭉툭한 무쇠 칼로 생선 살을 발라야 했습니다. 잘 들지 않는 칼로 생선 살을 바르니 뼈째 듬성듬성 썰릴 수밖에 없었을 터. 

이를 보다 맛있게 먹기 위해 양념을 하는데, 장독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늘 있어 이를 상에 꺼내어놓았습니다. 생선회를 반찬으로 밥 한 끼를 먹는다는 상상을 하면 과연 먹을 만 한 맛이었는지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생선회 한 토막을 장에 찍어 반찬으로 먹는 일을 상상해보세요. 지금 우리 입맛으로는 맛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후 어부들은 반찬으로 먹던 생선회을 밥에 올리고 비비는 조리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전통 조리법이자 가장 좋아하는 비빔밥 조리법인데요. 푸성귀가 있으면 있는 대로 대충 썰어 보태고 된장이나 고추장도 한 숟가락 넣었습니다. 참기름이나 통깨를 뿌려 고소한 맛을, 식초를 넣어 개운한 맛도 더했습니다. 여기까지 조리한 음식을 막회라 부르는데요. 근래에 들어 막회가 외식 상품으로 바뀌면서 밥이 빠지고 생선회와 푸성귀, 장을 따로 상에 올리고 있습니다. 또 일식집에서는 이 막회를 회덮밥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는데, 사실 일본에는 이런 조리법의 음식이 없습니다. 


이 막회에 물을 부으면, 바로 물회가 완성됩니다. 물회는 여름에 막회를 시원하게 즐기자는 발상으로 탄생했습니다. 또 부족한 막회의 양을 늘려 더위에 쉽게 지치는 배를 채우자는 생각도 보태진 것입니다. 하지만 물회는 막회와 달리 한 끼 음식이라는 정체성이 있어 늘 밥이나 국수가 함께 말아 나오게 된 것입니다.

현대적 미각을 타고 요리로 변신

어부의 끼니였던 물회가 별미로 떠오른 시기는 2000년대 이후입니다. 바닷가 피서지에서 물회가 별미로 유행을 타게 되면서 어느새 내륙 도시까지 전파됐는데요. 그러면서 맛도 현대적으로 변했습니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깔끔한 맛이 더해지고 모양도 화려해지고 있지요. 물회는 끼니에서 요리로 진화하는 중입니다.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가자미, 광어, 우럭, 쥐치, 도미 등 다양한데요. 비린내가 심하고 살이 무른 꽁치, 갈치, 고등어 등을 뺀 대부분의 생선을 물회로 조리할 수 있습니다. 

생선뿐 아니라 해삼, 멍게, 오징어, 전복, 성게소 등 어떤 해산물이든 물회로 활용할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섞어서 만드는 물회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물회 양념은 고추장이나 된장을 사용합니다. 동해안과 내륙 도시에서는 주로 고추장을 쓰고 제주도와 남해 일부 지역에서는 된장을 쓰는데요. 여기에 식초와 설탕 등을 넣어 새콤달콤한 물회를 내어냅니다. 다양한 양념 때문에 물회를 먹을 때는 생선회의 맛을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물에 강렬한 향의 고추장이나 된장을 듬뿍 푼 데다 참기름과 식초까지 더해지고, 여러 채소를 잘게 썰어 한데 모았으니 생선회만의 은은한 맛은 묻힐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물회는 생선회의 맛을 잘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조리법의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일까요?


황교익 
맛’을 글로 전하는 맛 칼럼니스트. 농민신문사와 (사)향토지적재산본부에서 향토음식과 지역 특산물을 발굴하고 취재하는 일을 했다. 현재 향토음식과 식재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음식 이야기로 소통한다. 오랜 시간 맛본 음식과 오랜 시간 나눈 이야기로 《맛 따라 갈까보다》 《미각의 제국》 등의 책을 썼다.


윗글은 < 사보 SK > 2015년 07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SK그룹 홈페이지 < 사보 SK > 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