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나폴리 종주 결심하기

“좋은사람들” 산악회 지맥팀에서 활동할 적, 선배 몇 분이 종주산행의 꽃은 지리태극종주라며, 생각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지리태극종주는 지리산을 태극모양의 선을 이어 종주하는 코스로 짧은 코스는 95km, 긴 코스는 진양호를 거친다 하여 120km에 달합니다.  하프 마라톤 코스를 하는 사람이 마라톤을 결심하기 어렵고, 풀코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울트라 마라톤을 도전하기 어렵듯이, 20~30km 산행을 주로 하던 내겐 90km 이상을 결심하는 것은 여간 해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치, 금융 프로젝트를 경험하지 않은 업체가, 금융 차세대 입찰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는 꿈의 울트라 종주산행의 정보를 얻기 위해 4년 “태극을 닮은 사람들”(이하 태달사) 산악동호회에 가입을 하였고, 가끔씩 산행 후기를 읽으며 언젠가는 태달사에서 지리태극종주를 꼭 하리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3개의 지리태극종주 코스( 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카페 )

그런데 우연히 태달사에서 “통영 나폴리 종주”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어렵지 않게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코스의 길이가 40km로 “도전”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었으며, 춥고 질퍽거리는 겨울 산행에 지쳐, 남도 산에서 봄내음을 폐 깊숙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7년 전 강북 5산종주(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삼각산) 이후 한번도 40km를 넘는 산행을 해 본적이 없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으나, 오랜만에 건강을 체크도 할 겸, 바다를 바라보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거칠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통영 나폴리 종주는 거제도 태극을 닮은 사람들 지부(이후 거달사)에서 주최를 하며, 4월은 남원 지부 회원들이 산행지를 결정하여 진행하고, 5월은 충청 지부 회원들이 다시 충청도에서 산행을 결정하여 진행하는 형태로 각 지부에서 돌아가며 행사를 개최합니다.

2015년 3월 21일 드디어 통영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4시간 조금 넘게 차로 이동하니, 이윽고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고, 거달사 총무 “앵경”님이 터미널에 들러 저를 내우고 산행 들머리로 이동해주셨습니다.  8시가 못되어 산행 들머리 동림마을에 도착, 지맥팀 선배 “숭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있는 동안 회원들이 전국에서 동림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 속속들이 도착했습니다.  동광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9시까지 행사 관련 설명을 들은 후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사진 설명)동광초등학교에서 모여 기념촬영(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통영 나폴리 마루금 걷기

이윽고 동림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거류산 들머리로 향했습니다. 늦은 밤에 모든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섬뜩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듣는 시골의 정겨운 소리로만 들렸습니다.  거류산 들머리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거류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선두부터 번호를 불렀고, 제 차례가 되서야 17번째 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0도 이상의 편각을 딛고 앞뒤 사람의 보조를 맞추느라 20분도 채 되지 않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이내 내피를 벗어 베낭에 넣고, 다시 오르막을 향해 걸었습니다.  아마도 17번째 순서는 30번째 순서 밖으로 떨어졌을 터, 다시 긴장의 끈을 묶고 오르막을 향했습니다.  오르막을 향해 30분쯤 오르니 주능선 길로 접어들면서 훤한 함안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늘씬하게 뻗은 남해고속도로와, 바다, 그리고 함안읍이 훤히 보이고, 바람은 상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진 설명)거류산 입구(21:00) (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거류산은 제 예상과는 전혀 달리 육산이 아니었으며, 아기자기한 암릉길이었습니다.  이윽고 산행 시작 40분만에 거류산에 도착하였고, 문암산을 지나 다음 목적지 엄홍길 전시관으로 향하였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지나고, 약간의 너덜길을 지나자 임도 불빛이 비추고, 마침내 엄홍길 전시관에 다달았습니다.  이미 먼저 도착한 약 20명의 인원들과 함께 과일을 나눠먹었습니다.

(사진설명)저보다 먼저 온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저는 건너뛰고 다음 산행지를 향해 걷습니다.(21:43) (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사진 설명)이윽고 도착한 엄홍길 전시관(22:32) (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10여분간 휴식을 마치고 도로를 따라 벽방산으로 향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벽방사 표지석을 만나게 되면 우측 안쪽 임도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산행 중 가장 싫어하는 아스팔트 임도 오르막길이 제법 길게 이어졌고, 벽방사를 지나자 다시 흙길로 이어졌습니다.  

저와 앞사람의 간격이 제법 멀어지고, 헤드랜턴 불빛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늘씬한 능선길을 지나, 다시 가파른 30분간의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나서야 벽방산 정상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시 34분 벽방산 도착(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벽방산 능선길을 40분쯤 지나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누군가 돌로 탑을 쌓아놓은 탑무더기 길은 위험한 너덜길이었습니다.  졸음을 헤치고 정신을 집중하여 내리막길을 지나 드디어 솔고개에 당도하였습니다.  솔고개에서 지원조들이 막걸리와 수육, 그리고 기타 간식을 차려놓았습니다.  막걸리 한잔과 수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시 천개산과 대당산을 넘어 시루봉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7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게 되었고, 새벽 4시가 가까워지자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은 혼미하고, 유체가 이탈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걷는 것인지, 육체만 걷는 것인지 가물가물해지고, 결국에는 넓은 데크에 뻗어 누워버렸습니다.  그러나, 누워있으니, 온기를 빼앗겨 잠은 오지 않았고 다시 발암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천개산과 대당산 정상 새벽 3~4시경) (출처 : 태극을 닮은 사람들 뽀빠이님 作)

발암산을 지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절개지 거쳐 임도에 다시 다다르니 길을 알 수 없어 다시 GPS를 켜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통영 시가지의 도로와 교차로를 지나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지원조가 아침 음식을 준비하여 주셨고, 시원한 된장국에 요기를 한 후,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능선길을 따라 직진을 하다, 길이 아닌 것 같아 GPS를 보니 약 300미터 정도 알바(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 행위로 산꾼들이 쓰는 은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되돌아와, 공원묘지 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으니,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였습니다.

새벽녘 아름다운 매화를 바라보며시가지를 지나 밭을 가르며 가는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주택가의 흐드러지게 핀 매화봄을 재촉하는 동백

산동네를 지나, 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니 통영장례식장이 보이고, 한창 공사중인 절개지를 뚫고 산기슭을 오르니, 망월봉 정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산을 내려오니, 산동네가 펼쳐지고, 산동 옆 밭길을 따라 다시 통영 시내를 통과하여 건너편 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산인 천암산길을 따라 오르자 장쾌하게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항구와 배, 그리고 바다에 밭 전() 자처럼 그려진 양식장들이 보였으며, 해안길따라 펼쳐진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진 마루금 길엔 진달래와 암릉이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진 좌 : 망월봉 정자에서 산유화님 사진 가운데 : 통영 나폴리 마지막 산인 천암산 정상 사진 우 : 천암산을 지나 아름다운 통영 나폴리 종주길(통영 여행을 하는 분께 간단한 트레킹으로 추천하고 싶네요. 200미터 낮은 산이나, 조망이 뛰어납니다.)

이윽고 산행 보조를 맞춰주신 닌자거북이님과 하산을 완료하였고, 111명 중에서 7등으로 내려왔습니다.  물론 실력이 7등이란 것은 아니고, 가지고 있는 GPS 덕분에 알바를 좀 덜하기도 했고, 고수분들이 중간, 후미에서 열심히 챙겨주신 것도 있을 겝니다.  등수보다는 결코 샛길로 갈 수 없는 마루금의 우직함을 남도의 봄과 함께 느끼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오감으로 느끼는 봄 종주산행, 종내 종주하고야 말았네요.

하산 후 선두 조들과 함께 기념샷

마지막에 산행 길을 함께 해주신 닌자거북이님

하산 및 목욕재개 후 신나는 뒷풀이



  1. 산마루금 2015.05.14 22:48

    산이 거기 있어 오르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피도, 땀도 언젠가는 바다로간다.
    이 모든 것을 받아 줄 바다가 있어 우리는 넉넉히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릴 수 있다.
    그래서 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