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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4 아침 8 , 어지숙 사원과 함께 용산역 행복나눔바자회 행사장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고 규모도 컸다. 행사장은 용산역 중앙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장군의 막사 같은 운영본부 텐트 주변에 봉사활동 조끼를 입은 구성원들이 병사들처럼 포진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참여하는 회사 바자회라 놀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3회째로 역사가 오래 바자회라고 했다. 여러 관계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모여 있었다. 장수의 깃발들처럼 관계사별 매장별 팻말이 붙어 있었다. C&C 부스로 가니 이미 우리 모듈의 옥준삼 차장님과 나태관 사원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도 많이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들뜨기 시작했다. 진행요원이 다가와 판매 수칙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형가전을 판매한다고 했다. 내가 질문했다. "호객행위 돼요?" 업계용어로 휘팔이라고 하는데, 중요했다. 전자제품 파는데는 그거 없이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호객행위는 허용 내지는 소극적으로 권장되었다. 사람들이 당신이 거냐며 기대한다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재미있을 같았다. 


매대를 둘러봤다. 10 개장이라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벌써 사람들의 관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장터라는 것은 딱히 물건이 없는 사람조차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커버 뒤에 무슨 보물이 숨었을까 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매대를 들춰보았다. 벌써 예약까지 해두려는 손님도 있었다. 정도면 호객행위가 따로 필요 없겠는데 싶을 정도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테크노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외삼촌네 가게에서 MP3 팔았던 적이 있다. 가게도 10시에 개장을 했고, 전에는 매대를 그렇게 검은 천으로 덮어 두었다. 당시 나는 워낙에 쭈뼛거리느라 물건을 팔아 금방 그만 두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얼마나 있을지 자신에게 궁금해졌다. 



10시가 되고 커튼을 걷었다. 줄을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돈을 꺼내들었다. 계산하느라 분주해졌다. 전기포트, 밥솥, 온풍기 같은 것들이 가장 먼저 팔려 나갔다. 아주머니들은 눈썰미가 좋았다. 붐비고 시끄러운 와중에도 상품의 제조사와 브랜드를 확인하고 좋은 것만 쏙쏙 골라갔다. 정신없이 1시간이 지났다. 매대에 깔아두었던 물건들이 많이 빠져나가 뒤에 쌓아두었던 물건들로 다시 채웠다. 


팔려고 내놓은 물건 중에는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 같은 악기도 있었다. 기타는 꺼내 놓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기타는 출장 가는 길이라는 어느 여자분이 사갔는데, SK임직원 카드로 결제하길래 반가워서 물어보니 하이닉스 분이었다

발걸음은 출장지로 가지만 기타와 함께 마음만은 보헤미안. 그래도 출장 가는 길에 기타를 메고 수는 없다며 질러놓고 쩔쩔매시는 분께 용산역 사물함에다 맡기실 있다고 안내를 해드렸다. 

그 다음 물건은 키보드. 악기라는 건 소리를 들려줘야 사는 법이다. 멀티탭을 끌어와서 전원을 연결해놓고 자동 반주를 틀어놓으니 좀 낙원상가 같았다. 잠깐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화음을 맞춰가며 반주를 넣었다. 확실히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중간중간 휘팔이도 했다. “어르신, 이거 하나 들여놓으시면 댁에서 파티도 하실 수 있어요! 버튼 누르면 소리도 바뀌는데!” 나중엔 내가 재밌어서 키보드를 들고 비트를 타고 있었다

그러고있으니 사람들이 오며가며 키보드에 관심을 보였다. 가격표가 안 붙어 있어서 처음에는 가격을 좀 세게 불렀더니 사람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몇 번 할인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온 손님이 연식을 물어봤을 때 인터넷에서 모델 스펙을 검색해보고 이 물건을 비싸게 팔 수는 없음을 깨닫고 적당한 가격에 드리기로 했다. 다들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던 낡은 키보드가 이렇게 주인을 찾았다. 중국 말씨의 아주머니였다. 내가 주머니에 넣고 있던 핫팩을 서비스로 드렸더니 매우 좋아했다. 그 아주머니는 그 때부터 핫팩으로 손을 데워가며 바자회가 거의 끝날 때까지 전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폭풍 쇼핑을 하셨다. 


기타와 키보드를 팔고 나자 파는 데 재미가 생겼다. 옆 매대에서 멀쩡한 코트 다리미가 주인을 못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저걸 팔아주겠소.’ 다리미를 내가 서 있던 매대로 가져왔다. 동료 나태관 사원에게 코트를 빌렸다. 코트 걸이에 코트를 걸어놓고 다리미로 다림질 하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3분도 안 돼서 그 물건을 알아본 손님이 다가왔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물건이 팔렸다. 쇼핑백에는 들어가지 않아 운영본부에서 박스를 가져와 포장했다. 테이핑을 하고, 손잡이를 만들어 붙여 드렸다. 기분 좋게 물건을 들고 돌아가는 모습에 나도 흡족했다.



손님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매대 근처를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치면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면서 매대로 불러들였다. 상품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손님이 이 물건들은 SK에서 만든 것이냐고 물어오면 아니오 저희 구성원에게 기증받아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고 안내했다. 가전제품이다보니 연식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었고 그럴 때는 스마트폰을 꺼내 모델명으로 검색해서 제조사와 제조년도를 찾아서 설명했다. 상품이 잘 팔리게 박스에서 꺼내어서 진열하고, 전원을 연결하고, 먼지를 닦았다. 그렇게 오전을 마쳤다. 엄청 배가 고파서 번개처럼 밥을 먹고 오니 이제야 옆 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들 열심히 팔아서 많이 한산해져있었다. 

이제 잘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프린터, 온풍기, 가습기, 공기청정기, 펜 마우스, 셋탑박스, TV수신카드. 이것들은 중형가전이거나 아니면 황학동 도깨비시장처럼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다 팔았다. 내가 모르는 물건도 뭔지 알아보고 사가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은 넓고 수요는 있다. 시장은 재미있었다. 



한 시부터 두시 반까지는 아무리 떠들어도 물건이 안 나갔는데 사람들이 무럭무럭 우리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로 SK 와이번스,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기증품 판매와 싸인회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장신의 훤칠한 SK 선수들이 오자 우리는 순식간에 쩌리가 됐다. 선수단이 돌아갈 때까지 사람들이 전부 선수들만 보고 있기에 우리도 조금은 한산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구성원 중에도 팬이 있어서 선수들하고 사진을 찍고 싶어했지만 아쉽게도 기회를 얻을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화장실을 다녀오며 바자회장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어느 코너이고 다 북새통이었다. 자리에 돌아오니 사장님이 와 계셨다. 따뜻한 커피를 주고 가셨는데 기운이 많이 났다. 



그 뒤로 폐장까지 세 시간 동안 이게 팔릴까 싶었던 물건들을 놀랍게도 거의 다 팔았다. 우선 펜 마우스가 여러 개 있었는데 이건 팔기 쉬웠다. 한 개를 박스를 까서 진열해놓고, 지나가는 손님이 뭐냐고 흥미를 보이면 그냥 손이 쥐여주었다. "이거 터널증후군 예방도 되구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노트도 할 수 있습니다, USB라서 아무 장비에나 다 꽂아서 쓰시면 돼요." 그러면 그냥 팔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TV 수신카드도 웬 할아버지가 오더니 용도를 알아보고 사 갔다. 신기한 건 그분은 그 물건보다 SK C&C라는 회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셋탑박스도 SK C&C라는 회사를 알아본 손님에게 팔았다. 그 셋탑박스는 따로 포장도 스펙도 없이 어댑터와 리모콘만 덩그라니 있어 심히 당황스러웠으나 다행히도 인터넷 기사에서 해당 제품의 홍보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이 물건에 관심을 보였을 때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여드리니 흔쾌히 구매했다. 



레이저젯 복합기 두 대가 각 13만원에, 잉크젯 복합기 두 대가 각 2만원에 나와 있었다. 고가품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어 운영본부에 문의해 행복한나눔 공식 연락처를 안내하며 판매를 시도했다. "레이저젯이 부담되시나요? 저렴한 가격에 잉크젯으로 복합기는 어떠신가요?" 이런 식으로 복합기 제품군으로만 매대를 꾸렸다. 결국 여차저차 잉크젯 복합기 2대는 모두 팔 수 있었다. 

꾸준히 팔고 있으면 물건들은 꾸준히 나갔다. 어떤 물건이건 필요한 사람은 있었기에 잘 설명해드리기만 하면 팔렸다. 구성원들도 열심히 팔았다. 누가 한 개 팔 때마다 "오오 팔았어?!" 하고 서로 띄워주면서 재미있게 팔았다. 진행하시는 분들이 어차피 오늘 판매되지 않은 물건들은 나중에 다른 경로로 판매하거나 필요하신 분께 기증할 예정이니 무리할 거 없다고 했지만, 서로 추켜주는 분위기가 재미있어서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크고 아름다운 공기청정기 한 대가 있었다. 배송도 안 해주는데 이걸 누가 사갈까 했는데 결국 어떤 덩치 큰 손님이 관심을 보여서 할인해드리니 들고 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결국 레이저젯 복합기와 자외선 살균기 빼고 소형가전 전 제품을 다 팔았다. 뿌듯했다. 

안 팔릴 거 같은 물건들을 잘 팔았다고 같이 있던 분들이 나를 판매왕이라고 불러 주셨다. 하지만 사실 우리 구성원 분들이 기증해주신 물건들은 다 좋은 물건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팔 수 있었다. 바자회를 찾은 사람들이 사간 가전제품에서 만족을 얻기를 기대했다. 우리의 판매활동의 결과로 구매자에게도 불우이웃에게도 모두 이득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열심히 팔았다



정말 모두에게 이득일 것이다. 내게도 큰 이득이었다.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자신감. 10년 전 테크노마트에서 MP3를 팔지 못하고 쭈뼛거리던 소년이 이제 용산역 한복판에서 기타도 팔고 키보드도 팔고 공기청정기까지 팔았다. 내게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회사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생각지 못하게 큰 의미를 찾게 되어 하루 종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 행복나눔바자회에 다시 오면 그 때는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마지막 30분은 손님으로서 쇼핑하면서 마이보틀하고 토스터 오븐을 굉장히 싸게 샀다. 팔이 두개 뿐인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쇼핑도 뿌듯했다.

♣ 글 : 통신솔루션사업팀 우병일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