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교수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빼어난 유머 감각이 있어서도, 화려한 언술이 있어서도 아니다. 말은 느릿하게 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생각을 허투루 담는 법이 없는 그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폭넓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지식과 배움의 근원, 기술과 인문학의 방향, 실학 사상 속 혁신을 말하는 사이 자연스레 2012년의 대한민국, 또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만열 교수만의 특별한 힘인 것이다.

 

미국 이름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한국 이름은 이만열(李漫烈). 껑충한 키에 파란 눈의 이 남자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예일대 학사와 도쿄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출신에 국립대만대와 서울대에서 수학한 쟁쟁한 학력이 흥미로울까. 중국어·일본어·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동아시아의 고전과 역사, 문화를 25년 넘게 연구해온 벽안의 학자라는 게 놀라울까. 아니면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펴내고,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둔 다문화 가정의 가장이라는 점이 친근할까.하지만 그를 굳이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경계 없이고민하는자유로운 지식인이라 말해두고 싶다.

 

                                         

 

가장 먼저 궁금했다. ‘배움에 대한 강렬한 열의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화려한 학위가 으스대기 위한 타이틀이 아닌 집요한 배움의 결과라는 것은 쉽게 짐작되는 터였다.그는 답을 위해 예일대 1학년이던 1984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저는 앞으로 아시아가 발전하고 중국이 전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설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아도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드물었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한자를 독학하기 시작했지요. 고전에 빠져든 것도 문화와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배움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경향을 감지해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구체화해 목표로 삼다 보면 공부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죠. 학생도 무조건 공부하기보다는 미래를 그리고 목표를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상상력에서 시작되는 배움이라. 학자로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아시아의 미래를 예측한 것만은 제대로 성공했다며 활짝 웃어 보이는 이만열 교수. 이제 가르치는 일이 더 많아진 그의 교육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혜나 창의력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 환경을 만들어줄 수는 있죠. 그래서 저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오늘 질문해서 내일이나 다음 학기에 답을 듣는 게 아니에요. 오늘 질문하면 학생은 10년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학부 때 교수님과 나눈 대화가 지금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고, 세상의 현상이 어떤지, 진리의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배움과 문화, 전통을 바탕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5~10년 후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지금 한다는 이만열 교수. 세상을 앞서 보지 않고서 어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상상력은 가르침에서도 통하고 있었다.

 

이만열 교수는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에도 관심이 높다. 1998년 공대로 명성이 높은 일리노이대 교수로 재직하며 과학기술 분야 교수들과 교류를 하게 된 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고전과 전통문화 그리고 기술의 융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의 기술 발전은 인간 역사상 가장 빨랐습니다. 이런 변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대학, 정부,기업, 국제 관계 등 모든 조직에 유동적 요소를 더하게 되지요. 그런데 빠르면서 어지럽기도 하죠. 이런 상황이라면 기술 개발 자체보다는 기술을 관리하는 문화가 더 중요합니다. , 제도와 문화가 필요한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절실합니다.향후 10년이 문제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모호해집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인문학의 감각이 필요한 거죠.

 

10년 후 통역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만열 교수는 한국적 인문학의 중요성도 잊지 않았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과거로 가서 한국적 문화와 사상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시 와서 기술과 융합해야 합니다. 태권도, 한의학, 유도, 불교 등 전통적 사고와의 융합이 중요하죠. 융합 하면 스티브잡스만 떠올리는데, 한국에서는 서양의 인문학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사상과의 융합이 더 큰 힘이 되지요. 한국의 고전 철학과 이념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이만열 교수는 고전과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회복하고자 함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당시 인문학의 기술을 빌려 미래로 가는 길일 뿐, 지금에 와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토록 현실 감각이 날 선 지식인이라니. 그와의 대화가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다.

 



이만열 교수를 말함에 있어 ‘실학’을 빼놓을 수 없다. 박지원과 정약용은 그의 주된 연구 대상이고 박지원의 소설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그들의 모습 속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혁신의 자세를 읽어낸다.

 

“그들은 18세기 조선의 고착화된 제도와 관습을 혁신하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은 먼저, 중국의 문화에 대해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소개했다는 겁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우호적 대상의 것일지라도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거부할 수도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죠. 둘째 로 빈부 격차와 신분제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입니다. 박지원의 소설을 보면 거지나 농민, 하층 관리 등 신분이 낮은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문체는 어려운 한문이죠.지식인에게 그들이 보지 못한 실상을 알려주려 한 것입니다.

셋째로 이처럼 소설로 자극을 줬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정책 제안도 많았지만 문학의 힘을 이용해 근본적인 의식을 바꾸려 한 점이 돋보입니다. 제도나 기구의 설립이 아닌 문화를 통한 혁신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마지막으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움을 자신의 것, 나만 잘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박지원과 정약용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몇 백 년의 지혜로 남겨주었습니다.”

 

18세기 조선의 변화를 거침없이 읽어내는 이만열 교수에게 200여 년의 시차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상업과 무역이라 는 커다란 변화와 마주한 18세기는 정보화라는 큰 변화 앞에 마주한 현재와 비슷하다. 앞서 고민한 자들을 만날 수 있다. 는 것, 이만열 교수는 이것이역사의 중요성임을 강조한다.


                                            

 

사실상 변화는 막을 수 없다. 이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변화를 맞아야 할까? 그는 문제를 발견하는 힘과 소통, 그리고 교육을 강조한다.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Don’t solve problems.’라고 했지요. 하나하나의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를 계기로 새로운 방향을 확인하고 전망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 구성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공동 의식이 필요합니다. 소통이지요. 마지막으로 교육입니다. 한국에서는 대학,대학원까지 잘 마치면서 막상 조직에 들어가면 교육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회사에 입사한 후에전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만열 교수는 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철학과 사상적 깊이가 동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깊다는 것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절박함으로 지식과 기술, 변화와 혁신을 말해준 이만열교수. 그럼에도 그와의 만남이 짧게만 느껴지니 이 아쉬움은 그의 생각을 촘촘히 엮어낸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로 달랠 수 있을까. ‘세계의 모든 문화를 포용하면서 한국의 전통을 발전시키되, 민족이란 협소한 개념에서 벗어나 세계의 당당한 리더로서 한국의 위상이 정립되기를바라며 써 내려간 한 줄 한 줄.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호된 꾸중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3월호 | 사진 : 손준석(노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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