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식사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일단 맥주 한잔을 걸치며, 에피타이저로 감자샐러드와 감자크림스프. 그 다음으로는 프렌치 프라이와 사워크라우트를 곁들인 소시지 요리. 메인 요리는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인 로스트 비프나 돼지고기 볶음. 이런 인상의 식탁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감자로 시작하여 감자로 끝나는 느낌 적인 느낌! 감자가 없는 독일 요리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자는 빼놓을 수 없는 독일 식탁의 터줏대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독일에 감자가 정착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긴 세월이 필요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독일의 감자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 감자가 보급되기 전 독일인의 식탁

지금에서야 감자가 없는 독일 식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감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독일인들은 어떤 요리를 먹었을까요?

18세기 빈민 시설 식사는 대략 아래와 같았습니다.

평일낮 : 완두콩(혹은 양배추), 버터 흑빵

평일밤 : 메밀죽, 버터 흑빵

일요일 낮 : 소시지, 흑빵

일요일 밤 : 메밀죽, 호밀빵, 에담치즈

일요일은 조금 호화(?!)스러웠지만, 그 외에는 흑빵과 메밀죽으로 허기를 떼우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전시에 보급되는 조식이 오히려 훨씬 나을 정도였습니다. 귀족은 당연히 훨씬 고등의 식사를 했겠지만, 일반 농민들의 식사는 이것보다 아주 조금 괜찮거나 비슷한 수준의 식사였다고 합니다. 이 후 100년 정도가 지나자 감자가 혜성처럼 나타나 거의 주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식탁에 빈번히 등장하게 됩니다




2. 빈부들의 음식, 감자

감자의 원산지는 안데스 산맥, 현재의 페루 근방입니다.

16세기말에 스페인에 의한 남미 침략 과정에서 콘키스타도르(에스파냐에서 신대륙으로 보낸 정복자들)에스파냐에서 신대륙으로 보낸 정복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배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게 됩니다.

맨 처음에는 진귀한 관상용 식물로 대우받았지만 궁정이나 대학의 전원에서 재배되어 18세기초에 이르러는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아일랜드에서 일상식으로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도 처음에는 관상용으로 재배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식용 재배가 시작된 것은 17세기부터 18세기초두에 걸쳐서 였습니다. 서남부 팔츠지방과 동부 포크트랑트 지방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죠.

팔츠 지방에서 최초로 감자를 가져온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스위스 군인 설, 이탈리아 망명 종교인 설, 인접한 알자스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포크트랑트 지방은 인접한 보헤미아에서 유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죠.

이들 지방은 산악지대로서 전통적으로 곡물생산량이 적어, 17세기말에는 감자를 세금으로 납부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답니다.

18세기에 들어서 이 두 곳으로부터 감자 종자가 퍼져 독일 전역으로 전달되었죠. 그러나 주로 토양이 좋지 않은 지역의 영세 농민이 모인 곳에 집중 되었다고 하네요. 북독일, 북서부, 남부 바이엘른 등의 밀 생산이 풍족하게 진행되었던 지역에서는 성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빈곤한 자들의 천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아주 강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겠죠?





3. 꾸준한 계몽활동

독일에 감자를 보급한 1등공신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 라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제가 솔선하여 감자 재배를 추진했고, 계몽 작업도 주도하여 농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이 그 전설의 내용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프로이센지역에 감자 재배가 성행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어 본 전설은 조금 과장된, 말 그대로 전설의 레전드적인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감자 재배를 추진한 것은 지방의 의사나 교사, 성직자 등의 지식인들로서 그들이 지방의 농민들에게 감자 재배를 계몽하여 서서히 서민들의 삶으로 녹아 들게 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당시는 계몽주의 시대로서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사상이나 기술이 탄생했고 지방의 지식인들은 그것들을 열심히 흡수해서 지방의 농민들에게 보급하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북부 글뤼크스부르크라는 마을의 필립 에른스트 류다스라는 인물은 '감자 재배를 위한 소지침'이라는 책자를 정리하여 농가에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경작 방법, 토양과 비료, 수확 방법, 감자종의 설명이나 맛의 차이, 요리 방법 추천 등의 초보적인 감자 지식서였습니다. 

1780년대에는 보다 구체적인 감자의 작물 병 대처법이나 보존 방법, 상함 방지, 감자가루를 이용한 레시피 , 좀더 세밀한 노하우를 담은 책자가 발간 되었습니다더 나아가서는감자를 키우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느낌으로 계몽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죠.

1796년 발간된 농부 게오르크 라인하르트의 생애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인 게오르크는 다른 농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감자 재배를 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른 농부들이 시기와 질투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게오르크에게 동화되어 감자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착한 게오르크는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에게 전수해, 감자 덕분에 모두가 부유해지는 해피엔딩 스토리입니다.

이러한 오락적인 매체도 활용한 지식인들의 노력 덕분에 서서히 감자 재배는 농민들 사이에서 자리잡게 되지요.





4. 국민식이 된 감자.

독일에서 감자가 급격히 뿌리내리게 된 계기는 17711772년에 발생한 대기근 때문이었습니다.

남부남동부의 곡창지대가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괴멸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고, 호밀 가격은 폭등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감자 재배가 안정되었던 지역은 기근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감자 재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관직자들 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두에 걸쳐 감자 재배량은 꾸준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늘어나 1890년에는 밀가루 140만톤 수확에 몇배나 되는 800만톤을 수확했으니, 독일인의 식탁에 감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1850년에는 독일인 1인당 감자를 약 120kg정도 소비하는 수준이었지만, 1900년경에는 약 250~300kg으로 2배가까이 늘어 거의 주식으로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감자가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자 감자요리 레시피는 쉬지않고 만들어지게 되었고 직접 먹는 것 외에도 감자를 사용한 증류주 슈냅스도 개발되어 감자양산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죠. 

이렇게 감자는 독일의 식탁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감자는 삶든 굽든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도 맛있고, 수 많은 양념과 어울리며, 담백하면서도 본연의 맛을 가지고 있어 다른 재료와의 궁합도 매우 좋습니다. 영양가도 빼놓을 수 없죠. 이런 훌륭한 식자재가 나타났으니 비단 독일 뿐만이 아니라 감자에 구원받은 나라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 독일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매일 고기와 감자만 질리도록 먹어!’라며 불평하시지만, 독일에 한번도 다녀와보지 못한 저로서는 독일에 간다면 매일매일 감자 요리를 질리도록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입니다. 지금 당장 독일에 갈 수 없다면 오늘 저녁 집에서 감자요리 어떠세요? 평소의 그냥 감자가 아니라 독일을 대기근에서 구해냈던, 많은 빈부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줬던 위대한 감자요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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