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이 기존의 서체로 작업할 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글자에 담아 디자인했다. 한글의 원리를 살리는 탈 네모꼴 서체가 흐름일 때는 반대로 네모꼴 안에 한글을 꽉 차게 담았다. 장방형 글꼴에 복고풍 디자인, 김기조 스타일은 그렇게 기존의 것들을 거스르며 탄생됐다. 남다른 발상과 실험적인 시도로 새로운 분야와 접목하며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타이포그래퍼 김기조의 weird story. 


Q. 디자이너 김기조, 무슨 일을 하시나요?

기존. 익숙함. 벗어나다.

저는 레터링을 작업의 도구로 삼는 디자이너입니다. 레터링이란 서체로서의 글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글자, 즉 제한된 단어나 문장만을 위한 글자 디자인이죠. 한글 전체의 규칙과 균형을 설정하기 보다는 그 문장 안에서만 통용되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글자의 형태를 좀 더 파격적으로 만든다거나, 기존에 보기 힘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기에 유리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대학 시절, 학내 밴드 ‘뺀드 뺀드 짠짠’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면서 첫 레터링을 하게 됐어요. 그다지 세련된 이름도 아니고 한글 형태로도 예뻐 보이지 않는 이 글자들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기존의 서체들로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모양으로 글자를 그려봤는데, 다행히 과정과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 계속 레터링 작업을 하게 되었던 거죠. 기존에 존재하는 서체로 디자인하는 것에 익숙해 있던 상황에서 그것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그 점이 제게 신선함을 가져다준 것 같아요.
특히, 한글 레터링 분야는 문장, 또는 단어가 이미 그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에 있어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해요. 제 작품들이 내용과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평가해주시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싶어요. 글자의 형태 자체가 언어를 그대로 담고 있어 얻을 수 있는 효과, 의미를 전달하는 데 언어만큼 명확한 수단은 없으니까요.
 


Q. 디자이너 김기조가 시도한 ‘이상한 일’은 무엇인가요?

흐름을. . 네모꼴. 복고풍.

당시 서체 디자인은 한글이 가진 고유의 규칙과 원리를 잘 살려내고자 하는 ‘탈 네모꼴’의 흐름이 발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죠. 초성과 중성, 종성의 결합 규칙을 가진 한글이 정형화된 틀 안에서 만들어내는 왜곡도 한글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글을 네모꼴 안에 가득 차게 넣었을 때 생기는 특유의 왜곡이나 변형, 즉 획이 비뚤어지거나 일그러지는 형태가 재미있었어요. 탈 네모꼴을 역행한 새로운 시도가 바로 과거 글자의 형태를 반영한 디자인이죠.
당시 흐름에 반하는 네모꼴 복고풍 형태의 시도는 정서나 의도에 있어 부합하는 작업들을 만나서 빛을 발할 수 있었어요. 당시 작업으로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많이 했는데, 앨범에 실리는 노래나 주변의 환경들이 복고적인 정서를 많이 요구했고, 자연스럽게 과거의 글자의 형태를 따르는 작업을 하게 되었죠. 반면, ‘존나 공정한 사회’와 같은 메시지 형식의 개인작품은 의도적으로 복고적 형태를 반영했어요. 당시 한 공직자 비리와 관련해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화두가 되던 때였어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나 비논리적인 상황들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죠. 과거의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는 현재, 그럴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도 결국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고, 그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과거의 글자 형태를 디자인에 반영했던 거죠. 시간이 많이 지난 작품들임에도 아직도 회자가 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일은 제가 처음에 작업할 때만 해도 이런 복고풍의 레터링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런 스타일들이 일상적인 부분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다는 거죠. 요즘은 초기의 복고적인 느낌이나 형태와 같은 시대적 맥락에서 벗어나 한글이 취할 수 있는 다른 형태, 가능성에 집중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Q. 김기조만의 ‘이상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규칙과. 질서를. 파괴하는. 시도.

디자인이 내용을 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파랑’이라는 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한다고 할 때, 빨간색을 사용할 수도 있고 ‘부드러움’을 표현할 땐 딱딱하고 직선적인 것으로 부드러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목적을 두는 것이지, 그것을 어떻게 충실히 설명하느냐는 목적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터러로서 제가 그려내야 할, 표현해야 할 글자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늘 하고 있죠.
특히, 레터링 작업은 한글이 본래 가지고 있는 형태나 규칙을 깨는 시도에 자유롭죠. 예를 들면, 전체적인 형태의 완성도나 균형감을 위해 몇 개의 획을 탈락시키는 방식인데요. 글자들의 개별적인 형태들은 읽어내기 힘들지만, 전체 문장을 보면 읽어낼 수 있어요. 글자 하나하나를 보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의 윤곽을 보고 이해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문장을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형태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가 들어가도 읽을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의미와 형태의 두 가지가 맞닿는 미묘한 경계선에서 시도를 해보는 거예요. 문장 중에 쓰이는 ‘를’ 같은 글자에서 초성과 종성 사이에 쓰이는 모음을 삭제함으로써 기하학적인 선처럼 보이지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낱글자가 아닌 레터링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죠. 이외에도 기하하적 구조나 색을 배치하는 방식의 시도, 평면에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작업이 아니라 실제로 물성을 가진 물체로서의 개념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그때그때 흥미를 느끼는 것, 그리고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크고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Q. 이질적 분야와의 융합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세요.

새로운. 분야와의. 만남

저는 타이포그래퍼이자 레터러 이전에 디자이너로서 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콜라보는 평소 시도하지 못하는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콜라보란 두 대상이 균등하게 자신의 역할을 각자 나눠 하나의 매체 안에 풀어내는 작업이잖아요.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에서 제게 주어지는 기회는 완성된 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요소로서의 작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콜라보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이 콜라보의 결과가 무엇으로 나올 것인가 하는 부분이죠. 그 매체의 특성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야 하니까요. 가장 밑바탕이 되는 매체의 논리에 충실해야 해요. 예를 들어, 의류 브랜드와 콜라보를 할 때는 제가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옷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브랜드의 이미지에 잘 맞아야 해요. 디자이너로서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어요.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아티스트가 자기의 욕망을 제어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이해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저의 작업이 콜라보를 통해 결과물로 나온다는 것이지 콜라보가 저의 예술만을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거예요. 가장 적합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야 콜라보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한때는 타이포그래피라는 분야가 매체로 완성되는 결과물이 적은 분야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던 때도 있었어요. 타이포그래퍼, 레터러는 ‘재료를 만드는 디자이너’, 다시 말하면 ‘손에 잡히는 내 것의 결과물이 없는 디자이너’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요소로서의 작업, 재료를 만드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더 유연하게 새로운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콜라보의 기회가 주어질수록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기회도 많아지니까요.

 

사내기자 취재수첩

국선 대리가 김기조 씨에게

물었습니다 

Q. 구성원들이 보고서 작업, 시스템 화면 구현하는 업무를 할 때, 어떤 폰트를 사용할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혹시 추천해 주실 서체가 있으신가요?

A. 쓰기 어려운 폰트는 있더라도 좋지 않은 폰트는 없습니다. 전달력이 높고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폰트는 이유가 있겠죠. 중요한 것은 용도와 목적에 따라 적당한 폰트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목, 본문에 어울리는 폰트가 다를 것이고, 맑은 고딕체과 와당체의 쓰임이 다르겠죠좋은 서체를 쓰고 싶다면 꾸준히 버전업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제안을 하는 것이 필요해요. 평소 사람들은 서체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서체도 IT기업에서 제작, 판매하는 소프트웨어처럼 하나의 제품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제안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더 좋은 서체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Q. SK주식회사 C&C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회사입니다.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가장한 분야이기도 한데, 저희 구성원들이 기존의 질서를 두려워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융합하고, 혁신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조언 부탁드립니다.

A.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전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다른 것, 독특한 것,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보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느끼거나 평소에 당연하게 지나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먼저 남들을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 발명반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일상에서 지나가는 것들, 사소한 것에 호기심과 의문을 갖고 주변에 대해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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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K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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