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남자의 발걸음이 휘청했다.
태풍도 버텨낸 그였으나 딸아이를 품에 안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는 바람을 타고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 성공사에 ‘김승진’이란 이름 석 자를 남겼다.

 

남태평양을 항해하는 요트 위에서 남자는 쉰세 번째 생일을 홀로 맞았다. 그날의 바다는 평화로웠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이고 빵을 구워 조촐한 케이크도 장만했다 하니, 바람은 적절하고 물살은 유순했으리라. 어쩌면 두 달 동안 그를 따라온 알바트로스가 요트 위를 선회하며 우아한 축하 비행을 보여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람처럼 가벼이 흔들거리는 갑판 위에서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이런 유행가 한 소절쯤 살짝 가사를 바꿔 흥얼거려도 좋았겠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모험’하기 딱 좋은 나인데~

5년 전 나이 오십을 목전에 두고 집을 팔아 요트를 장만할 때도, 지난해 10 19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요트 세계 일주를 떠날 때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미풍이건 폭풍이건 그에겐 늘 항해하기 좋은 바람과 모험하기 좋은 오늘이 있을 뿐이다.

 

돛을 올린 지 7개월 만인 2015 5 16,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왜목항으로 돌아온 김승진 선장은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 성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론 6번째 성공 기록이다. 귀한 성공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단히 혹독한 모험으로 정평이 난 항해다. 일단 이름 자체에 걸린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데,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일링 요트를 타고 혼자 떠나야 하며(단독), 항구에 정박해서도 안 되고(무기항), 통신으로 기상 정보만 제공받을 뿐 다른 배의 도움을 일절 받을 수 없다(무원조). 총 항해 거리는 4km 이상이어야 하며 모든 항해 경로는 한쪽 방향으로, 적도를 2회 이상 통과해야 한다.

바람에 운명을 맡기고 나 홀로 떠나는 지구 한 바퀴의 여정에 실패는 곧 죽음이 될 수도 있다.

 

 

 

무원조를 원칙으로 한 항해지만 배를 띄우기까진 무수한 원조가 바탕이 됐다. 워낙 자금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였던 만큼 김 선장에겐 후원이 절실했고, 사람들에겐 꿈의 대리인이 필요했다. “항해를 결심하고 지인들에게 알리자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반응이 100%였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도전인 만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싣고 떠나달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획안에도 ‘희망 항해’ 란 타이틀을 달았고, SNS로 알리기 시작했죠. 자신의 꿈도 싣고 싶다며 1만 원을 입금한 어린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요트 개조와 수리 과정에 재능을 기부해주신 분들도 많아요. 당진시 부녀회 분들은 7개월치 항해 식량을 준비해주셨죠.

‘모험’이란 단어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앞뒤 재지 않고 꿈을 향해 직진하는 김 선장을 통해 가슴속에 쟁여둔 꿈을 들춰보게 된 많은 사람들이 희망 항해를 응원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김승진 선장의 아라파니 호는 무수한 이들의 열망과 염원을 동력 삼아 돛을 활짝 펼쳤다. 요트 한쪽 면엔 희망 항해를 지지해준 후원자의 이름을 빼곡히 새겼으니, 이는 사납게 요동치는 바다 위에서 든든한 무게추가 됐다.

적도를 지나 피지, 칠레 케이프 혼,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을 거쳐 다시 왜목항으로 돌아오기까지, 항해 거리 4 1,900km에 달하는 210일간의 여정은 대양 항해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와 상상만으론 닿을 수 없는 극강의 황홀과 공포를 포함한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돌고래 떼와 헤엄치다 상어에 쫓기기도 하고, 남극해에선 끊임없이 떠내려 오는 유빙에 포위되기도 했다. 태풍 언저리를 지나며 배가 전복될 뻔한 위기도 숱하다. 흥미진진한 항해 에피소드들은 생생한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김승진 선장이 요트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록해온 덕분이다. 기실, 다큐멘터리 PD 출신인 그에겐 익숙한 작업이었다.

지난 6, MBC 다큐 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지구를 사랑한 남자>는 김승진 선장이 셀프 카메라로 기록한 항해일지의 50분짜리 편집본이다. 시속 70km의 강풍 속 요동치는 배 안에서 비상 탈출 장비를 챙기는 와중에도 카메라 앞에 선 그다. 셀카봉을 이용해 돌고래 떼를 수중 촬영한 평화로운 자연 다큐가 돌연 공포 영화 <죠스>가 되는 순간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 바다에서 발견한 인생 2

 

상어와 유빙과 태풍의 위협 속에서 그가 취한 자세는 언제나 정면 돌파였다. 상어 앞에선 팔과 다리를 큰 대() 자로 뻗어 몸집을 최대한 부풀린 채 셀카봉을 휘둘렀으며, 유빙 천지 남극해를 통과할 땐 오히려 유빙을 쫓아 배를 몰았다. 피할 수 없는 태풍이라면 차라리 태풍의 눈 속으로 진입했다.

순간순간 삶의 뒷덜미를 잡힌 듯한 섬뜩함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공포의 뒷면은 황홀경이었다.

 

“죽겠구나 싶은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왔으니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다고. 온전히 나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니까요. 두려움을 내려놓자 위험천만한 유빙 천지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처럼 경이로운 대자연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감사했죠.

 

본격적인 준비 기간은 1년이라지만, 그에게 이 항해는 십 수 년에 걸쳐 눈덩이처럼 굴려온 꿈이다. 요트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2001, 일본 출장 중 우연히 서점에서 펼쳐든 책 한 권이 시발점이 됐다.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한 호리에 겐이치의 자서전이 그것. ‘꼭 한번 도전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요트를 장만하기까지 근 10년이 걸렸다.

“더 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에 2010, 집을 팔아 요트를 구입했어요. 당시 요트 구입처인 크로아티아에서부터 한국까지 혼자 배를 몰고 온 것이 저의 첫 대양 항해인 셈이죠. 10개월에 걸친 2km의 기항 항해는 가장 즐거웠던 항해이기도 합니다.

무기항 세계 일주가 그의 세 번째 항해인즉, 항해 경험이 썩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꾸준히 즐겨온 터라 바다와 친숙한 것은 물론 일찍이 한강과 일본의 시나노 강을 헤엄쳐 종단했을 만큼 도전의 내력도 만만치 않다. 이에 다큐멘터리 PD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쌓아온 견문까지, 김 선장의 인생 전반전은 후반전의 유쾌한 변신을 야기한 자양분에 다름 아니다.

자신을 ‘해양모험가 김승진’이라 규정한 그의 새로운 명함이 증명하는 바다와 모험을 키워드 삼은 그의 인생 2막엔 요트를 중심축에 둔 해양문화 전도사로서의 역할과 책임감이 크다. 해서 다음 항해는 보다 규모를 키워볼 작정이다. 요트 두세 척을 동시에 출항시키고 구간별 릴레이 형식으로 탑승객을 받아 총 500명이 참여하는 기항 세계 일주를 기획 중이다. 이동수단이 곧 생활공간이 되는 요트 여행, 요트 생활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함이다. 그의 요트 ‘아라파니’는 바다를 뜻하는 순우리말 ‘아라’와 달팽이를 이르는 ‘파니’의 합성어. 사람이 만든 탈것 중 가장 속도가 느리다지만, 물과 바람만 있으면 지구 한 바퀴도 거뜬히 돌 수 있는 것이 요트의 매력이다. 요트 예찬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 선장이 습관처럼 바람을 읽었다.

“지구엔 항상 바람이 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이 불고 있잖아요? , 대양 항해하기에 딱 좋은 바람이네요.

 

♣ 글 : 고우정
♣ 츨처 : SK 주식회사 C&C 사보 'Create & Challenge'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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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승진 2015.09.26 08:06 신고

    SK C&C 사보팀의 취재 감사합니다. 열정적인 취재 모습에 제가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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