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 작가의 작업실에는 똑같은 시계 세 개가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는 뉴욕, 또 하나는 런던 그리고 한국이다. 세계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두 도시의 시간을 수시로 감지하며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는 이이남 작가. 틀을 깨는 것이 현대 미술의 가장 기본이라고 말하는 그의 작업실은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었다.

모네의 <해돋이>와 소치 허련의 <추경산수화>가 두 개의 화면을 오가며 대화를 나눈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속에 크레인과 고층 빌딩이 들어서더니 위압적인 군용기와 낙하산까지 화면을 채운다. 그뿐이랴. 지난 6세기 동안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던 예수를 처음으로 분리해내 하늘로 떠오르게 함으로써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이이남식으로 근사하게 재해석해냈다. 고故 백남준 작가를 잇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이이남 작가는 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난해하다는 현대 미술을 흥미롭게 펼쳐내고 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어요. 제가 다니던 대학은 로뎅이나 미켈란젤로 등 근대 조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지요. 그런데 3학년 때 뉴욕에서 막 부임한 교수님의 현대 조각론 수업을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술의 폭이 이렇게 넓구나. 어디로든 확장해갈 수 있겠구나.’ 생각이 열린 것이지요. 그전까지는 새로운 영역을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졸업한 후 대학 만화과에 강의를 나갔는데 학생들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미디어 아트를 떠올리게 됐지요.”

생각이 열리니 주변의 모든 자극이 상상력을 깨웠다. 틀을 벗어던진 자의 자유로움은 추진력 또한 더했다. 미디어 아트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전혀 다른 영역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조각을 할 때는 흙을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하듯 미디어 아트를 위해서는 미디어가 의도대로 제어돼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두꺼운 화면에 낮은 화질의 TV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단순히 하나의 모니터만으로 작품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병풍식으로 여러 개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려다 보니 막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디스플레이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할 정도였지요. 다행히 현재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늘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작업이 작가의 숙명인지라 표현의 한계는 그 자체로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 미술 그리고 미디어 아트를 만난 이이남 작가는 신이 났다. 회화나 조각의 정적인 한계를 미디어 아트의 동적인 움직임으로 해소해내며 자신 안의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 2014 이이남 작가의 작품은 늘 열려 있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메시지를 유추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명화의 재해석, 소통과 융합 그리고 새로움

‘움직이는 명화’ ‘명작의 재해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작품은 소통, 융합, 만남이라는 조화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기존의 명화를 ‘미디어’라는 현대적 캔버스로 담아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 동양 미술과 서양 미술의 만남, 과거와 현대의 만남을 자연스럽고 위트 있게 주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과 미디어 아트는 어렵다는 편견이 많지요. 사실 평론가들의 말을 조합해보면 현대 미술은 복잡하고 헷갈리고 여러 번 생각하게 하는 난해함이 미덕입니다. 이게 없으면 좋은 작품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래도 해석을 관객 몫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미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관객이 예술품 앞에서 5분 이상 머물렀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예술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길게 음미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관객은 흥미를 갖지 못하면 오래 보지 않거든요. 그래서 관객의 시선을 잡는 기존 작품들을 차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마르가리타 공주>, 2014

기존 대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는 일은 꽤 위험한 작업일 수 있다.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쓴소리도,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오롯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이남 작가는 단순히 명화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수묵화와 서양의 유화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으로 색다른 감동을 주고, 평면적으로만 보았던 산수화의 깊은 골짜기 곳곳을 깊이 있게 들어가 서양화 속 주인공까지 만나게 한다.

<모나리자>라는 작품은 다들 알고 있잖아요. 저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이면을 새롭게 해석해봤습니다. 앞에선 평화, 뒤에선 싸움을 준비하는 근대국의 위선을 ‘전쟁’이라는 이미지에 겹쳐 표현해봤지요. 한편 동양의 산수화는 참 비밀스러워요. 첩첩산중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직접 볼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그 안에 펼쳐진 전혀 다른 세상을 그려봤습니다. 서양 미술을 접목해서요.”

이이남 작가의 작품이 가볍게 휘발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새로움’ 때문이다. 기존의 원칙에 갇혀 있지 않고 제도나 규범을 낱낱이 해체한 그의 작품은 유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5~10분 동안 이어지는 작품 앞에서 쉬이 시선을 돌릴 수도 없다.

<그리스도는 왜 TV를 짊어졌을까>, 2014

미디어 아트라고 해서 디지털에만 집중했다면 차갑기만 할 뿐 예술성은 떨어졌을 거예요. ‘앤티크’와‘첨단’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요소를 같이 놓아두었기에 ‘새로움’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다 있는 것인데 어떻게 조합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애플의 성공이 그러했듯 기존에 있는 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하나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의 작업실 벽면은 명화는 물론 잡지나 책, 포스터, 신문 한 조각 등 그가 스크랩한 이미지들로 빼곡하다. 아이디어는 전혀 생뚱맞은 곳에서 불현듯 튀어나오기에 그의 관심사는 폭넓다. 

산책 중에 만난 치자꽃이 명품 브랜드의 문양과 똑같아 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고,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해 작업하던 어느 날 이 두 자료가 한 책상에 함께 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동서양의 접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이남 작가는 예술은 원칙이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제도나 규범 역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자유로움이 사소한 조각을 아이디어로 키우는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틀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 예술

이이남 작가는 자신을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틀로 가두는 것을 경계한다. 무엇이든 시도하고 도전하는 ‘현대 미술 작가’가 그를 제대로 짚어내는 수식어다. 캔버스를 화면으로 옮겨오며 주목을 받았던 그는 다시금 그 틀마저 깨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피에타>를 재해석한 <다시 태어나는 빛> 역시 화면이 아니라 조각과 빛을 활용한 신선한 재해석으로 눈길을 모았고,

<다시 태어나는 빛(스케치 버전)>, 2014

5월 9일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의 초대 작가로 출품 예정인 <Re Born Light>는 미디어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TV와 인간이 구성 면에서 닮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에게 육체와 정신이 있듯이 TV도 몸체와 빛(콘텐츠)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지요. 물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가전제품이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통해 자승자박과 같은 현실에서 해방되는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이남 작가는 작품을 통해 조화를 말한다. 모든 것이 이분화, 양극화되는 시대에 물질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미디어 그 이상의 퍼포먼스로 펼쳐낸 것이다. 담양 촌놈이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을 줄은 몰랐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네는 이이남 작가. 익숙해졌다 싶을 때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도전이 더욱 기대된다. 하지만 그도 답을 알 수 없다.

가는 새로운 작품밖에 답이 없거든요. 그래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는 게 답입니다. 미리 알면 새롭지 않으니까요. 다만 ‘울림’이 있는 작품, 긍정적인 기운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길 저 역시 바라고 있을 뿐이지요.”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싼 다양한 조각들이 그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잡지의 화려한 광고사진과 미켈란젤로 화집과 우리네 풍속화와 익살맞은 만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에서 어떤 조합이 어떤 상상 이상의 융합을 만들어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거둔 이이남 작가의 상상이 제법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은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이이남 미술 작가

1995년 조선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한 후 독창적인 작품 활동으로 ‘제2의 백남준’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또 2002년 ‘제8회 광주 미술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5년 ‘올해의 미술가 대상’, 2009년 ‘대한민국 올해의 청년작가상’을 수상하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은 현재 청와대, 반기문 UN사무총장 집무실, 국립현대미술관, 예일대학교 등 국내외 곳곳에서 소장돼 있다.

글 강현숙 |  사진 현일수

♣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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