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찾은 국선 대리와 박성진 사원은 새내기 대학생이 된 듯 들뜬 마음으로 음악대학을 찾는다. 이곳저곳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오는 복도를 지나 다다른 힐러리 베네사 핀첨 성 교수의 방에는 거문고와 장구, 해금이 익숙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교수실 한쪽을 좌식으로 꾸미고 방석으로 자리를 권하는 그녀는 한국인보다 더 친밀하게 전통문화를 누리고 있었다. 

국선 대리는 핀첨 성 교수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특히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까지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 박성진 사원 역시 글로벌한 시각으로 국악을 연구하며 느끼는 다양성의 힘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 두 사람은 오늘, 핀첨 성 교수의 일일 제자를 자청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뚜렷한 목표가 없었어요. 교수님이 어떤 방향으로 연구할 거냐고 물으시면나중에 결정할게요’ 하고 도망쳤지요. 그러다 국악을 만났습니다. 무속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만난 민속학 교수에게 한국 음악을 추천받았죠.

학부 때부터 인류학에 관심을 가져온 그녀에게 동아시권 문화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물론 한국 음악은 처음이었지만 이 역시 중국이나 일본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편한 마음으로 국악을 접했다. 그런데 한국 음악은 그녀에게 놀라운 반전이었다. 1996, 그녀가 처음 접한시나위’는 완전히 다른그동안 전혀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세계의 음악이었다.

 중국 민속음악은 밝고 활달한 편이고, 일본 민속음악은 조용하고 공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반면, 한국 민속음악에서는 즉흥성 속에 숨은 에너지가 인상적이었어요. ‘혼돈 속의 질서’라고 할까요너무 가늘지 않고 소박한 음색도 저와 잘 맞았고요.”

 때마침 한국학을 전공하면 연구비가 지원돼 고민할 것 없이 한국 음악을 공부하기로 방향을 맞췄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익힌 뒤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마친 그녀는진도아리랑’, ‘세마치장단’ 등 한국 음악 지도에 나섰다. 그러던 중 서울대에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악의 진화를 추구하다

최초의 외국인 국악과 교수의 등장에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세계 음악 중 하나로 국악을 바라보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접목과 어울림으로 더욱 큰 에너지를 발산하는 국악, 핀첨 성 교수가 이어가고 싶은 국악의 모습이다

국악은 전통 그대로 지키고 보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늘 변화하는 것이 국악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국악에 위기가 찾아왔어요. 엔카, 기독교 음악, 팝 등 외국 음악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옛것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긴 것이죠

다행히무형문화재’라는 시스템 덕분에 겨우 지킬 수 있었지만요. 그래서 1970~80년대에는 전통 그대로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목표일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법 뿌리를 내렸고, 국악이 절대 사라질 것 같진 않거든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핀첨 성 교수는 조선시대까지는 국악을 따로 배우고 가르치는 장이 없었다고 말한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음악이었고, 함께 어울려 일하고 위로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었다. 시대에 맞게 변화할 줄 아는 유연한 음악이 바로 민요, 판소리, 산조와 같은 국악인 것이다.

국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선율이 덧입혀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곡을 쓴다는 걸 감히 상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악기와 선율의 기본을 지키면서 이 시대에 맞는 곡을 새로 쓰는 작업이 중요하죠

국악은 시대와 삶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통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도 시대와 소통하는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이나 국악 단체인정가악회’, 젊은 소리꾼 이자람의 활동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퓨전 국악이 선보여졌지만 핀첨 성 교수는 뿌리를 잃지 않고 전통적인 기본을 지키는 음악을 높게 평가한다. 악기의 퓨전이 아닌 시대정신과 삶을 잘 녹여낸 국악의 진화, 그것이야말로 옛것의 반복을 넘어 국악이 계속 살아 숨쉴 수 있는 비법이다.

 

현장에서 생명을 더하다

핀첨 성 교수가 학생들에게 또 하나 강조하는 부분은 즉흥성과 현장성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암기 연주에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틀을 깰 것을 강조한다. 자유롭게, 마음이 가는 대로 연주해보는 것이다. “대학 시절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어요. 처음으로 잼 세션에 참여했는데악보 없이 어떻게 연주하지?’ 하고 깜짝 놀라 눈치만 보다 내려왔지요그러다 조금씩 시도해봤어요. 소리를 내고, 실수도 하며 적응해갔지요. 새로 시작하는 모든 것은 어색해요. 하지만 그 어색함을 깨야 뛰어들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어요. 실수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이를 해결하면서 배우고 자신감도 생기지요.”

일단 해봐야 그것이 좋은지 싫은지, 할 만한지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며 부딪혀보기를 권하는 그녀는 학생들의 현장 연구 리포트에 짜릿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현장 연구 프로젝트로 선정된 경기민요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파주, 인천, 광주를 찾은 학생들은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전수관에서 민요를 배우며 생생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현장에서 부대끼며 직접 뿌리를 찾아내길 원했던 핀첨 성 교수의 의도를 정확히 살려낸 학생들의 모습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기존의 국악 연구는 국악을 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논문이 많았어요. 저는 인류음악학을 접목해 직접 찾아가고 인터뷰하는 등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음악의 의미를 찾고, 다른 나라 음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살펴보지요. 국악 자체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세계 음악이라는 넓은 틀에서 보는 것이지요. 특히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연결 고리를 다양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국악’은 대한민국의 정말 훌륭한 유산이고, 문화재라고 말해봤자 감흥이 없습니다. 삶의 맥락 안에서 풀어야 흥미를 갖지요.”

풍류나 산조, 시나위가 이 시대의 힐링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핀첨 성 교수. 연구년을 맞은 그녀는 전라도 진도로 떠날 계획이다. 일반인들이 판소리를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보고 싶다는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이미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제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시대에 따라 그때그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 국악. 핀첨 성 교수가 기록하고 만날 2015년의 국악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생명력 넘치는 음악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내기자 취재수첩 힐러리 핀첨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SK C&C 구성원이 쉽고 재미있게 국악을 즐길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국선)

국악 공연이나 악기 체험 여러 가지 즐길 거리가 많이 있어요. 그러나 사실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죠. 가지 소개하자면, 국립국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행사나 수업이 있어요. 덕수궁, 운현궁 여러 고궁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있고요.

국악을 포함해 한국 음악 전체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박성진)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우선 뿌리를 잊어선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결국에 한국의 색깔을 찾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적인 것을 살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국악과 같은 전통 음악은 한국 고유의 색깔을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여러 선택과 도전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때의 마음가짐은 어땠나요? (국선)

일단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시간을 내기 힘들다거나 없다는 걱정은 모두 핑계죠. 무조건해보자!’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평소 열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도 중요하죠. 그러던 자연스럽게 나와 맞는 부분을 찾을 있다면 금상첨화죠

저도 처음에는 넓은 분야를 아우르며 공부했어요.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님과 상의하면서 주제를 좁혔죠. 처음부터 가지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여러 기회에 관심을 두면 자신에게 알맞은 역량을 찾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글 : 강현숙 | 사진 : 현일수

♣ 사내기자국선 대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사내기자로서 많은 구성원 여러분을 만나 인터뷰 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요. 

♣ 사내기자박성진 사원’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의 철학이 녹아 있는 삶을 향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통은 내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라 생각하며, 항상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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