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략,다음세대를 위한 사명 

산업공학과 컴퓨터, 바이오뇌공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공학자의 길을 걸어온 이광형 원장이 미래 전략에 관심을 둔 건 안타까움과 사명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 컴퓨터를 전공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융합 학문을 이끈 그의 연구는 언제나 시대를 한발 앞서왔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 전략은 혁신경제, 녹색성장, 창조경제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달리할 뿐 장기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일

이는 자신이 누린 기술적, 환경적, 경제적 풍요를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줘야겠다는 사명이기도 했다. “요즘처럼 추운 날 지하철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온 게 매우 근래의 일이거든요. 저는 이 풍요로움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을까, 과연 우리 후손도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저는 20년 후에도 이 풍요가 지속되긴 힘들 것이라 생각해요. 성장 한계에 와있는 만큼 지금의 여유는 한탕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잘될 것이라는 낙관만으로는 내 자식과 손자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없어요.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한데 성장하려면 기술만 발전해서는 안 됩니다. 통합적인 미래 전략이 필요하죠.

도곡동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만난 이광형 원장은 한 세대의 기준이 되는 30년 후의 미래를 그리며 두 돌이 지난 손자를 떠올린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의 고민은 현재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은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6대 주력 산업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자동차와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은 정체와 적자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것만으로 다음 세대가 먹고살 수 있느냐? 저는 부정적이라는 거죠.” 뚜렷한 위기 지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는 지금, 이광형 원장은 현재의 정체를 극복하는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는 투 트랙 전략을 미래산업이 나아가야 할 해법으로 제안한다.
 

First Mover Fast Follower의 투 트랙

“기존의 6대 산업은 중국과의 전쟁입니다. 현재를 뛰어넘는 첨단 기술력을 장착해 새롭게 갱신해야 합니다. 지금껏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길을 개척하며 First Mover가 되어야만 승산이 있는 것이지요.”

첫 번째 트랙이 6대 사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라면 다른 한 트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이광형 원장은 미래를 이끌 신전략 산업으로 의료바이오, 에너지환경, 안전, 지식서비스, 항공우주를 꼽는다.현재 국내의 병원 장비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수십 억에 이르는 의료장비를 미국, 독일, 일본이 독식하는데 그저 태평하게 바라만 보는 게 이해되질 않아요새로 개척하면 됩니다. 안전에 있어 ICT 기술도 강조되지만 무기 산업 역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계 무기 시장은 거대합니다. 왜 우리나라는 총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비행기도 충분히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2명이 탈 수 있는 경비행기부터 50여 명이 탑승하는 소형 비행기까지 다양해요. 브라질도 만드는 비행기를 우리가 기술이 없어 못 만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대한민국 산업에 있어 한 번도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의료장비, 소총, 경비행기를 꺼내든 이광형 원장은 이 낯선 산업에서 희망을 감지한다. 길은 단순하다. 선진국 사례를 따라 FastFollower가 되는 것이다. “신전략 산업의 정답은 이미 선진국에 다 있습니다. 빨리 모방하고 따라잡는 능력이 탁월한 건 대한민국의 장점이지요. 이미 성공 스토리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성장 동력을 우리가 재빨리 빼앗아 와야 합니다. 머뭇거릴수록 기회는 줄어듭니다.”

정체된 기존 산업은 First Mover로 중국을 따돌리고, 신성장 산업은 Fast Follower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투 트랙 전략은 점점 더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고려한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이광형 교수는 여기에 더해 변화가 쉽지 않은 대기업들의 향후 발전 방향의 중심에 M&A를 배치했다.

“단순하게 성공한 기업들의 행보만 잘 살펴봐도 길이 보입니다. 현재 구글, 페이스북, IBM 1년에 수십 개의 기업을 인수합니다. 대규모 조직의 경우 자체적인 이노베이션이 쉽지 않아요.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윗선의 결재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자체적인 혁신도 좋지만 계속 주위를 관찰하고 가능성 있는 회사를 사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생존 전략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뺏거나 인력을 빼오는 것으로 눈가림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M&A가 앞으로의 길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대기업의 M&A가 활성화되면 기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창업이 활성화되고, 이것이 곧 창조경제의 기반이 된다. 대기업 위주의 경직된 기업 구조가 아니라 다채롭게 살아 움직이는 경제 생태계의 재편, 이는 대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평화,미래를 위한 결정적 한 수

가감 없이 현재를 진단하고 거침없이 미래를 내다보는 이광형 원장. 그는 현재의 위기를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길도 누구보다 간절하게 전한다. 특히 ‘3차원 미래 전략’이라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그래프를 통해 혜안의 비법을 전해주기도 한다.

시간, 공간, 분야를 각각의 축으로 삼아 3차원으로 살펴보면 중요 요소를 쉽게 분석할 수 있어요. 펜 하나만 봐도 2014년에서 20년 후인 2034년으로 시점을 옮기면 전혀 새로운 모습이 그려지지요. 공간은 경쟁자를 말합니다. 앞으로 미래 전략을 세울 땐 미국, 중국, 일본과 같은 경쟁자를 항상 생각하며 예측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교수로 꼽히는 이광형 원장은 첫 수업 시간에 내주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다음 방학 계획표를 미리 만드는 것이다.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6개월을 앞서 계획해본 학생들의 한 학기는 분명 다르리라 믿는 것이다. 생각하는 시점을 항상 10년 뒤에 두고 현재를 살라고 강조한다는 이광형 원장은 다소 딱딱한 미래 전략의 마무리로평화’라는 화두를 꺼내든다.

대내외적으로 사회가 불안하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매년 400조 원에 가까운 군사비가 지출됩니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해마다 400조 원의 모래 군장을 전 국민이 메는 셈이 되지요.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군사비가 계속 지출된다면 결코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군사력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관계는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행복한 미래의 필수요소.”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의 주력 사업이 꺾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침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 흐름에 방만하게 대처하다 보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다음 세대에 남겨줄 희망도 사라지고 만다. 이광형 원장은 길은 있다고 말한다. 2015년이 아닌 2045년으로 시점을 옮겨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 한 치 앞의 시선을 멀찌감치 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절반의 시작인 것이다.

:: 글 : 강현숙   | 사진 : 한정선

♣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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