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갈림길 앞에서 신중해지는 것은 아마도 선택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기도, 책임감이 막중해지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와 책임의 조화로운 균형, 이를 탐구했던 철학적 고민들을 함께 공유해보자.

 어느 조직에서나 구성원들에게 책임감이 강할 것을 요구다. 책임감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려는 의지이다. 이 의지에 의해서 업무가 잘 완수되고, 그 완수가 바로 그 조직의 성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은 항상 의무의 형식을 띤다. 지나치게 책임감만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자유와 자율이 침해를 받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구성원은 책임감의 틀에 갇혀 경색되고 자유롭거나 창조적인 선택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이렇게 되어 자유와 선택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고, 의무와 책임은 공적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다. 선택과 책임이 대립적 모순을 형성하고, 자유와 의무 또한 대립적 갈등 상황 속으로 빠져 버린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정말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10 13일 오후, 운전하며 귀가하는 길에 라디오를 듣는데, 어떤 야구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막 관리와 자율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사회자가 미국의 자율적 야구와 한국의 관리적 야구를 비교하며 질문했던 것 같다.

그 감독의 말인즉슨 관리와 자율은 대립하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자율이 없으면 관리도 의미가 없고, 관리 없이는 진정한 자율도 서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보통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은 각각의 존재성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자유가자유로 있고, ‘의무는 의무로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태도처럼 말이다. 책임과 선택도 말로 개념화하면 바로 대립적인 각각의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개인의 자유와 집단에 대한 책임도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둘 사이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분리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자유와 책임에 대한 철학적 고민

고대 중국에는 양주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 철학자는내 정강이에 난 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

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내 털 한 올천하가 대립하고 있다. 마치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사회적 책임을 버리고, 개인적 자유를 고집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면 양주는 정말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책임을 버리고 자유만을 추구한 사람일까? 

중국 고대의 또 다른 철학자 노자의 이야기도 비슷하지만, 양주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노자는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아낀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노자도 여기서자신사회를 대비시키고 있다.

그런데자신에 대한 사랑이 매우 큰 사람만이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조금씩 의미가 드러나는 것 같지만 아주 분명치는 않다. , 그러면 우리는 이제 한국이 낳은 매우 독특한 사상가 함석헌을 만나 볼 필요가 있다. 함석헌은 유명한 그의 저서 <너 자신을 혁명하라>에서 사회혁명 이전에 자기혁명, 자기해방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숫돌이 갈리지 않고는 칼을 갈아낼 수 없듯 역사를 가는 혁명의 칼도 나를 갈아세우지 않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강력한 학생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하여 일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그 지지가 힘이 되어서 정권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학생들이 졸업해 사회에 나온 후에, 사회는 새로 채워지는 졸업생 수만큼 정의와 도덕의 양이 증가했는가? 개혁은 성공했는가? 대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 너 스스로를 자유케 하라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혁명을 주장하던주체들이 스스로는 혁명 되지 않으면서사회를 혁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말은자신을 천하만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사회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양주가 개인적인털 한 올사회에 대한 책임성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일이자 자기가 먼저 혁명 되는 일이다. 양주의털 한 올을 뽑지 않는 일이나 노자가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 자유와 선택만을 강조한 말이 아니다. ‘천하의 넓이만큼 자신을 자율적 주체 혹은 능동적 주체로 먼저 성숙시킨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여기서 자유와 의무, 선택과 책임은 유기적으로 통합된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에 대한 통철한 자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정도의 함량을 가진 위대한초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자신의 존엄에 대한 통철한 자각은 윤리적 행위의 토대이자 창조적 활동의 출발점이 된다.

왼손과 오른손이 어긋나지 않고 통일적으로 움직이는 일이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통일적으로 하나의 시선을 이루는 일이 모두 독립된 주체의 역량으로 나오는 일이지 다른 두 개를 조화시키려고 하거나 통일시키려고 노력해서 나오는 일이 아닌 것과 같다. 주체로서의 역량을 갖춘 자기 자신의 건립이 관건이다. 오직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대립적으로 보이던 모든 것들이 이미 통일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네가 오직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해라. 그러면 책임과 의무도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글 : 최진석 님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등이 있다.

♣ 출처 : SK C&C 사보 ‘Create & Challenge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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